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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끌어온 ‘이재명리스크’가 법의 판단에 맡겨졌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늦은 감 없진 않지만 정치권이 이제 ‘제로섬’을 향한 새 출발선에 서게 됐다. 이제부턴 실력이다. 21대 국회에 주어진 시간은 명년 총선까지 반년 여 뿐이다. 누가 진정 대의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인지 민생과 나라의 미래 명운을 걸고 진검승부를 겨뤄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재명리스크’는 민주당만의 리스크가 아니다. 정치권은 물론 나라 전체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쳐왔다. 거대 양당 구도에서 전체의 60%에 달하는 입법 권력의 위력은 일방적인 폭주가 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칼은 칼집에 두라’는 경구가 있듯이, 할 짓 못 할 짓 없는 무소불위 권력일수록 유혹이 많은 법이다. 전방위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정치탄압으로 둔갑시켜 입법 위력을 사유화하려든 셈이다.
중앙의 정치무대로 날아든 지자체 단체장 출신의 갖가지 의혹사건이다. 애초부터 정치적 스캔들 축에도 못 드는, 사법부가 맡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면 될 문제다. 더더욱 당이 사활을 걸고 전투를 치르듯 참전에 나설 문제는 아니었다. 당 대표라는 직위 하나로 정치권 진입 이전에 저질러진 의혹사건을 국민의 혈세를 받아가며 왜 거대 야당이 사후관리까지 해 줘야 하며, ‘방탄국회’로 막아줘야만 했느냐는 반발여론도 거셌다.
거듭된 지적이지만 대선 후보가 되고 당 대표가 되는 파죽지세의 출세 가도에서 그의 궤적, 그 가운데 미처 검증되지않던 행적에 관한 문제다. 공적 영역에서 벌어진 일탈과 사익, 편익은 없었는지 법적 절차에 따라 다투면 될 일이다. ‘사법리스크’가 컷던 인물을 입법권력을 쥔 민주당의 대표로 앉힌 자체가 모순의 단초였다. 그 책임 역시 크다.
검찰이 적용한 갖가지 죄명으로 보아 이재명 개인으로서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울 일이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우리 국민이 180석이나 준 민주당은 사실관계로 볼 때 그들 자신과는 무관한 일을 갖고 할 수 없이 대리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이 이렇게 많은 의석을 민주당에 줄 때는 이재명 같은 정치인을 당수로 모시고 일년 열두달 수사와 재판을 막기 위해, 나아가서는 국가의 사법체계를 파괴하고 오늘날의 번영을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바지저고리로 만드는 일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법망 주변에서 풀면 간단한 문제를 가지고 우리 사회가 겪은 갈등과 반목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또한, 따질 수 없는 국가적 손실과 이로 인한 국민이 받은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다. 대선은 벌써 끝났고, 그리고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도 1년 반의 시간을 훨씬 지났다. 대선 잔해는 제대로 치워보지도 못하고 자욱한 화염의 터널을 빠져나오기까지 우리 사회가, 국가가 그간 얼마나 많은 대가와 희생을 치워야 했나. 북측의 안보위협에 따른 불안은 물론이고, 촌각을 다투는 나라 밖 국제사회의 거센 변화의 물결 속에 우린 너무도 지체되어 왔다.
이재명이란 개인의 일탈과 범죄혐의로 국한될 문제에 나라가 온통 전쟁을 치루듯 했어야만 했을지, 막상 사법판단에 넘겨진 마당에 와서야 허탈하다. ‘개딸’들로 불리는 극력 지지세력, 이른바 팬덤정치의 기세에 숨소리조차 내질 못하고 짓눌려 지내온 세월이다. 더구나 뉴스타파라는 좌파 인터넷방송을 통해 대장동 사건을 ‘윤석열게이트’로 만들려고 했다는 ‘음모’의 위력은 국민과 이재명 극력 지지자들에게 대단한 착시를 만들어 냈다.
이 여론조작 사건은 한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가장 적은 득표 차인 ‘0.73%p(24만 7077표)’차라는 초접전 결말을 만들었고, 지지세력에게 ‘환상’까지 심어놓고 이 대표의 팬덤정치를 가속화시켰다. 그가 중앙정치무대에 출현한 이후 한국정치는 그의 볼모가 된 거나 다름없었다. 이 끝나지 않은 대결국면을 나라 밖에선 내전상황으로 보는 우려의 시각도 강했다. 북측의 장거리핵탄두미사일을 수차례 시험발사하는 그 위기상황 속에서 비쳐진 한국의 정치권 모습은 과히, 가관이었을 것이다.
당외에서 발생한 대장동사건·대북불법송금사건 등으로 구속위기에 몰리자 국회 앞에 천막치고 드러눕기로 했다는 걸 민주당 사람들인들 왜 모르겠나. 그 부당한 이재명 대표의 단식 현장은 사극처럼 드라마틱 했다. 그 앞에 가서 눈도장 찍으며 굽신거린 이면에는 공천이라는 간절함이 있었음을 부인키 어려울 것이다. 인정에 약한 국민 여론도 잠시나마 술렁였다.
이제 조석으로 찬 바람이 인다. 어수선했던 여야가 지난 여름 장막정치를 거두고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때다. 잠시 곁눈질하던 모든 시선도 이제 난국 타개와 정국 안정을 초점을 맞춰 정면 주시가 필요한 때다. 당 대표 궐위 사태를 대비한 비상한 자세를 갖고 대국민 신뢰 회복에 심기일전 매진해야 하는 것도 민주당의 몫이다.
이재명 없는 민주당의 유·불리에 기댄 국민의힘 또한 범박(泛博)했다. 다수당에 밀릴 수밖에 없는 원내대책의 수적 한계만을 핑계 삼아 집권여당의 책임정치와 동떨어진 행보가 적지 않았다. 상대 당의 과실에 따라 이해득실 따지기에만 급급한 잔꾀는 이제부터 통할 리가 없다. 집권여당 다운 절대적 가치와 독자적 힘은 뒤로하고 얕은 표 계산, 용산 대통령실 심기 살피기에 골몰하는 타성도 벗어나야 한다. 이제 여야 모두에게 자력갱생이 필요할 시기다. 집권여당의 본분과 책무, 야당의 정당한 국정견제 능력을 통해 바야흐로 내년 4월 총선을 향한 진검승부에 매진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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