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공동성명이 도출될 당시만 해도 북한의 입장은 6자회담에서 자신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결렬과 무산, 재개와 난항 끝에 어렵게 합의된 9.19 공동성명의 내용이 북한의 전략적 요구에 대부분 부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9.19 채택 이후 경수로 건설 시기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신경전 그리고 BDA 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 사태가 벌어지면서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며 9.19에 명시된 바인 ‘상호 주권 존중과 평화 공존’의 정신이 관철되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고 이에 따라 금융제재 해제를 전제 조건으로 삼아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하게 되었다. 9.19 공동성명 이후 미국의 본격적인 대북 정책이 근본적 체제전환을 위한 본격적 압박 기조로 정리되면서 북한으로서는 6자회담에서 자신의 요구사항을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7월5일에 쏘아 올린 북한의 미사일은 이같은 교착된 국면을 돌파하려는 의도에서 미국으로 하여금 북미 양자 담판에 응하도록 압박하는 북한식 벼랑끝 전술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유엔을 끌어 들여 지금의 북한 문제를 6자를 넘는 ‘국제사회 대 북한’의 완벽한 다자구도로 전환시켜 버렸다. 북한이 굴복할 정도의 대북 제재가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지금 시기 중동 이외 지역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데다가 북한 문제는 6자회담과 유엔이라는 다자의 틀 안에서 현상 유지와 상황 관리 정도로 ‘방치’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6자회담이나 유엔의 다자 구도에 한국과 중국도 끌어 들임으로써 북한의 양자협상 요구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뿐 아니라, 상황이 마련된다면 본격적인 대북 제재도 추진함으로써 북한의 근본적 체제전환을 시도해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지난 5월 초 북한이 남북 관계 진전을 통해 한반도 정세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남측 정부의 의지에 일정하게 관심을 가졌던 것 역시 그 바탕에는 북미 양자 협상의 통로로써 남북관계 진전이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즉 미국의 대북 압박과 중국의 6자회담 복귀 요구가 여전한 상황에서 북한으로서는 자신의 전략적 요구사항인 북미 양자 담판을 얻기 위한 정세로서 남북관계 진전을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5월 초에 조성된 남북 주도의 한반도 정세 돌파 노력은 한국의 적극적 의지 부족과 이에 대한 북한의 감정적 대응으로 물거품이 되었고 급기야 북한은 미국을 직접 양자 협상 테이블로 끌기 위해 미사일 발사라는 벼랑끝 전술을 선택하고 만 것이다.
문제는 지금 미사일 위기의 해결책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양자 요구와 미국의 다자 고집이 절충점을 찾지 못하는 형국에서 한국은 시급히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대북 설득의 통로와 지렛대를 마련하고 동시에 불필요한 한미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한미공조의 정신에 토대해 대미 설득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6자와 양자의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접점은 결코 미국이 주장하는 바의 6자회담 내 양자 접촉이 아니다. 이는 북이 받을 수 있는 게 못된다. 물론 북한 요구대로 6자회담을 완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없다. 북한도 서명한 9.19 성명이 바로 6자회담에서 합의된 만큼 북미간 양자 담판을 진행하되 그와 병행해서 6자회담은 지속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북미의 타협지점은 최소한 금융제재와 관련된 미국의 최소한의 성의를 전제로 북이 6자회담에 복귀하되,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금융제재 해제 문제와 미사일 발사 중지 문제를 다루기 위한 북미간 양자 회담을 따로 병행해서 진행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묵은 양자협상이 수용되지 않고 대북 제재가 가시화될 경우 오히려 더 강경한 벼랑끝 전술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역시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덥석 양자협상 요구를 받을 수 없다. 북한의 양자 요구와 미국의 6자 요구가 일정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지금 위기의 해결책은 난망한 것이다. 결국 북한과 미국 모두 체면을 구기지 않는 범위에서 상호 요구사항을 적절히 절충하면서도 향후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남북관계 복원과 유지를 통해 북에게 6자회담 복귀를 꾸준히 설득하고 남북관계 진전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한미관계의 신뢰를 바탕으로 미국에게 대북 양자 협상에 나설 것을 진지하게 설명하고 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북한의 수재피해 복구를 계기로 시급히 남북관계 복원을 이루고 이를 토대로 대미 설득에 나서야 할 것이다. 9월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이 향후 한반도 정세의 운명을 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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