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끈질기게 저항해온 혁명의 나라, 피델 카스트로의 49년 집권 정도로만 생각되어지던 먼 이국땅이다. 도대체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의 턱 밑에서 무슨 재주로 용케도 독립을 유지하며 큰 소리를 치는가가 늘 궁금했었다. 또한 카스트로 대통령의 수염만큼이나 권위주의가 팽배하리라 생각도 했었다.
이번에 쿠바를 방문하게 된 것은 세계남자 배구대회 한국과 쿠바전을 참관하고 응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한배구협회장의 직함을 가지고 배구협회 상임고문님과 이사 한 분과 함께 방문길에 오른 것이다. 첫 날(19일) 경기는 역시 세계 최강다운 실력의 쿠바에 25대19, 25대18, 25대21로 패하였다.
이탈리아의 MVP 김호철 감독과 장윤창 단장, 그리고 국가대표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해 만찬을 함께하며 하룻밤을 보낸 Melia Cohiba 호텔 주변 분위기는 어느 서구 나라와 다를 바 없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서북단 끝에 위치하고 있고, 300마일 바다만 건너면 바로 미국 땅이다. 쿠바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숱하게 미국으로 탈출했다는데, 탈출에 실패하여 다시 본국에 송환되어도 특별한 제재가 없어서 20번이나 미국 본토진입에 실패한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미국의 ‘젖은 발 마른 발’ 정책에 의해 망명을 시도하는 쿠바인들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인데, 내용인즉 어떤 수단방법을 써서라도 미국땅에 한 발만 들여놓게 되면 이민국으로부터 최우선으로 영주권을 얻어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이 쿠바인에게 주어지지만, 만약 미국 해변까지 당도하였더라도 육지에 닿기 직전 미국 해안경비대에 붙잡히게 되면 체포되어 쿠바 본국으로 송환 된다는 미국의 특수한 법적용이 그것이었다.
물론 쿠바에서 이주의 자유가 무한정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수도 아바나로 상경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방문은 가능하되 마음대로 이주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보면 철저한 통제사회의 한 면을 느끼게도 한다.
세계 10대 해변 중의 하나라는 ‘바라데로’를 향해 달렸다. 우리 배구선수들도 시합이 끝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해변관광을 함께 했다. 3백미터 폭에 길이가 24킬로미터나 되는 좁은 반도 땅에 서북단 수십 킬로가 쪽빛 물색과 함께 밀가루 같은 부드러운 모래해변을 가지고 있었다.
쿠바는 원래 6개주였는데 1959년 카스트로 혁명 이후 세분되어 14개 주로 조정되었다. ‘바라데로’가 속해있는 지역은 ‘마칸자스 주’이며, 이 곳은 1924년 300여명의 한국동포가 멕시코로부터 이주하여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았다고 하여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칸자스 주에는 비록 한국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한국인 3세와 4, 5세대들이 아직도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19일 식사차 들른 아바나 시내의 차이나타운의 식당에서 두명의 젊은 아가씨들이 한국인 4세라 하여 무척이나 반가웠다. 조상이 김씨와 장씨라고 밝힐 줄 아는 20대 여성들이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발음이 제법 정확하여 감격스러웠다. 비록 쿠바 현지인들과 피가 섞여 서구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또박또박 사용하는 두마디의 우리말 발음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300여명의 우리 동포들은 쿠바에 가면 사탕수수농사를 지어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을 따라 멕시코로부터 이주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300명 이주동포들이 쿠바에 도착하는 시기에는 사탕수수의 수익이 적어 사탕수수 농사를 짓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이주동포들은 멕시코에서 했던, 수입이 적은 애니깽 농사에 다시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주로 마칸자스주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동포들은 빈한한 고달픈 역사를 갖은 채 쿠바 현지인들에 동화되어 버린 것이었다. 아마도 일제 침략으로 나라를 잃은 동포들이 서로들 살길을 찾아 세계 곳곳을 헤매던 시절, 이역만리이국땅에서 차마 죽지 못해 근근이 생활해 왔을 동포들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제어하기 어렵다.
호세 마르티가 주도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전쟁, 그리고 50여 년간의 친미정권, 바티스타 독재의 착취로부터 해방전쟁에 앞장섰던 혁명가 체 게바라, 그리고 게바라와 함께 혁명에 성공, 이후 47년간 쿠바를 통치해온 피델 카스트로 대통령. 이제 80세의 고령인 카스트로 체제가 얼마나 더 유지될 것인지, 우리 동포의 피가 흐르는 슬픈 사람들의 삶과 쿠바 민중의 장래는 어떻게 변화되어 갈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이미 폐차했어야 할 오래된 자동차가 거리를 달릴 정도로 아직 경제적 어려움을 걷어내지 못한 쿠바…
그러나 ‘미국이 어떤 짓을 해도 쿠바에는 다시 태양이 뜬다’고 믿는 굳센 자존심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 쿠바. ‘이러한 자존심이 어렵지만 세계 최강 미국의 턱 밑에서도 쿠바를 굳건히 유지해 가는구나’하는 생각을 뒤로하고 22일, 쿠바의 수도 아바나 공항을 이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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