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20일동안 정부기관 수십 곳을 감사하기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런 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15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 다시 돌아온 상임위원회이기에 이번 국감을 맞는 감회는 남달랐다. ‘사람들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기술은 얼마나 발전했을까’ 궁금한 점이 너무나 많았다.
어느 상임위가 중요하지 않으련만, 과학기술·정보통신 분야는 국가의 미래 ‘먹을거리’를 책임지며 그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한편 위원들이 느끼는 부담은 더욱 컸으리라 짐작된다.
더구나 방대한 정부 기능을 감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 곳은 국회밖에 없다. 이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에게 ‘견제’ 임무를 부여해 정부가 ‘독단’에 빠지는 것을 막으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부가 독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가운데 국회의 견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방만한 정부 운영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국회가 국감을 통해 정부의 문제점을 바로 잡지 못하면 그만큼 국가 미래도 어두워진다고 할 수 있겠다.
끊임없는 견제만이 ‘정부실패’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현 정부가 귀를 막고 독단에 빠져 있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없길 바란다.
이번 국감에서도 변하지 않은 게 두가지 있다. 정부를 놓고 봤을 때 ‘사람이 바뀌었는데도 생각은 그대로’라는 점과 국회 측면에서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견제임무를 다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의원은 소수’라는 것이다.
나는 국감을 이렇게 생각한다.
질문과 답변 과정에서 기관장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문제점을 제기하는 위원과 정부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감은 이를 위한 장(場)이 되는 데 본 뜻이 있다. 그러나 정부는 외형만 커졌을 뿐 이에 걸 맞는 체질개선은 뒤따르지 않았다. ‘이전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는 얘기다.
‘밀어붙이기식’ 정책결정과 이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는 위원들의 질문에 정부는 허둥대는가 하면 특히 북한 핵실험 이후 국가 안위와 연관된 물음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국무위원’으로서 책임있는 답변은 찾기 어려웠다.
올해 국감장에서 위원과 기관장간 질문·답변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예년과 다를 바 없었다.
발전적 대안모색을 위해 국감장에서 어느 정도 논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번 국감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 분야 기관장들은 논쟁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소신은 온데간데없고 위기를 모면하는 데만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정부의 ‘매너리즘’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었다.
이번 국감을 통해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사람은 그대로’라는 인상이 머리 속에 더욱 깊이 박힌 것 같다. 정책 결정권자들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 가운데 기술발전이 무슨 소용 있을까. 명심해야 할 것은 정부는 위원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이를 통해 정책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정치권으로 눈을 돌려보자.
국감 도중 여권에서 정계개편 논의가 불붙었다. 고 건 전 총리의 신당 창당 발표는 이 논의에 기름을 끼얹었다. 국감 지적사항의 정책 반영여부를 결정하고,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하고, 정쟁에 휘말려 돌보지 못했던 민생경제 회복 등에 전력을 다해야 할 기간인데도 말이다.
‘정책국감’을 한목소리로 다짐했던 여·야는 스스로 ‘국감정신’이 실종됐다고 자평할 정도였다. 국민은 ‘국회의원들의 본래 모습’이라며 쓴 웃음을 짓고 있다. 국감은 ‘그때 뿐’이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다.
정계개편 논의는 그동안 수면 아래 잠시 가라앉아 있었던 터라 예상됐던 일이다. 문제는 시기다. 국감이 끝나기 무섭기 봇물처럼 터져 나온 정계개편 논의로 인해 위원들이 국감 20일 동안 전국을 누비며 제시했던 정책대안들이 파묻혀 버리고 있다. 국감 무용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정치현실 때문이다.
여권은 정계개편 논의를 정기국회 이후에 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민을 의식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 상황은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수면 아래에 잠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작은 돌출변수가 하나 튀어나오더라도 거대한 얼음덩어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물 위로 떠오를 것이다.
나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지난 20일 동안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견제 임무를 국감에서 충실히 이행했느냐’는 질문에 나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국감에 앞서 터진 북한 핵실험 파장 등으로 소관 분야 정책대안 제시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나 역시 변해야한다고 뼈저리게 느껴고 있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국가미래가 담보되지 않는다’는 여러 사람의 충고를 되새기며 내년 국감을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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