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대통령을 옛날 임금과 같은 위치에 올려놓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그 위상은 높다.
실제로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다. 3권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었던 임금님의 권세와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시스템을 바탕으로 깐 정부기구의 방대한 권력구조는 오히려 옛날을 능가할 수도 있다.
그래서 5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대선일이 가까워지면 이당, 저당에서 누가 후보가 될 것인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현재 노무현 정부는 2008년 2월로 임기가 끝난다. 그 동안 많은 일을 했지만 불행히도 노정권의 임기 말 인기는 제로다. 진즉부터 레임덕에 들어갔다. 단임으로 끝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인기 만회를 위한 노력도 없다. 코드에 맞는 후보를 내고 싶어도 당내수용이 불가능하다.
걸핏하면 당을 깨고 새로운 통합신당을 만들자는 의견이 우세하다. 물론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자는 소수파가 있긴 하지만 인기 없는 대통령의 영(令)이 서지 않는 것은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나온 것이 이른바 오픈 프라이머리다. 어차피 여론도 나쁘고 인기가 없을 바에는 이판사판으로 달라붙어볼 수밖에 없다는 막가는 심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그것도 소규모가 아니다. 전국민을 상대로 200만 명의 투표자를 선정하여 후보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어느 당에 소속되어 있건 따지지도 않는다. 아무나 투표권 신청을 할 수 있다.
이 경선 방식을 채택한다면 맨 먼저 투표권 신청을 접수하고 지역별 유권자수와 맞춰 비례를 정해야 하며 신청자 중에서 200만 명을 추첨으로 선발해야만 한다. 이들에게는 투표날짜를 통고한 후 장소를 공고하고 투표 시행 후 개표에 들어가 그 결과를 발표하면 끝나게 된다.
이를 단순한 일정으로 나열하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동원되는 투표라면 그에 따른 사전준비가 철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기관인 선관위가 관여하더라도 엄청난 인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일개 정당 혼자만의 힘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더구나 현행 선거법은 사전 선거운동 등에 대한 철저한 규제를 하고 있는 실정이며 정당정치를 명시하고 있는 헌법과 정당법의 규정에도 어긋난다. 한마디로 불법이다. 정당 자체의 존재의미를 스스로 말살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픈 프라이머리는 날개 돋친 듯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열린우리당의 이 제안에 대해서 ‘정치적 꼼수’로 비하하고 있지만 정치적 이해타산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인사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고 있어 심상치 않다. 위법 시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여당에서는 국회에 이에 대한 법안까지 제출했다. 문제는 한나라당의 대응인데 최고위원 이재오는 변형된 형태의 오픈 프라이머리를 제시하고 나섰다.
열린우리당 안은 당적에 상관없이 전 국민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재오 안은 전국 당원 전원과 그 숫자와 똑같은 국민을 투표권자로 하고 같은 숫자의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를 가지고 후보자를 결정하자는 안이다. 이 제안을 내놓으면서 그가 사실상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필자는 의문이다. 열린우리당에서 계획하고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는 위법시비에 휘말리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당원을 참여시키기 때문에 합법이라는 것일까.
그러나 위법은 마찬가지다. 선거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사전선거운동을 오픈 프라이머리는 비켜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조항도 삭제해버리면 아무 탈이 없겠지만 대통령선거만 선거가 아니기에 모든 선거에서 사전선거운동은 합법화된다. 이렇게 되었을 때 그 혼탁함을 누가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여야가 합의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불법적인 선거법을 여야 양당이 담합한다면 국민이 가만있겠는가. 결국 경선방식을 핑계대고 국면을 깨버리거나 돌발적인 행위로 국민의 시선을 끌려는 얄팍한 잔재주로 밖에 볼 수 없다.
대선경쟁이 치열할수록 가장 냉철한 이성을 견지해야 하는 데가 정당이다. 참으로 국민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보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다면 자기의 이익에 따르기보다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슬기를 발휘해야 한다. 흔히 선거구 획정을 위해서 여야가 합의하여 개개인 후보자가 유리하도록 만드는 것을 게리만다린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최악의 정치담합이다.
이번에 대선 경선방식을 둘러싸고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담합한다면 그들 모두 철저한 패배자로 전락할 것임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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