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해산된 신민당 소속 의원들 중에서 정치 활동에 규제를 받지 않은 이들을 중심으로 만든 당이 민한당이고, 공화당과 유정회 출신 중 일부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출범한 당이 국민당이었다. 민한당과 국민당 총재는 각각 유치송 씨와 김종철 씨가 맡았는데, 이 두 정당은 창당 초기부터 세간과 마찬가지로 기자들 사이에서도 관제 야당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다.
당시 야당 출입기자였던 나 역시 그런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었다. 심증보다 물증을 찾아야 하는 건 수사관만이 아니다. 기자 역시 명확한 증거를 확보한 뒤에 기사화를 해야 탈이 나지 않는 법이기에 일단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두 정당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연관 관계를 통해 아무개는 누구와의 연줄로 어느 정당에 들어가고, 아무개는 누구와의 관계 때문에 어느 정당에 참여하고… 하는 식으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선거 취재는 지역 담당을 정하게 되는데, 11대 총선에서 부산·경남 쪽이 내게 할당되었다. 부산 동래에서 민한당으로 출마한 박관용 씨는 신민당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고 첫 출마여서 제일 먼저 선거 캠프에 들렀다. 뭐 하나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게 없었다. 상대 후보인 민정당의 김진재 씨나 국민당의 양찬우 씨와 비교하면 딱 거지꼴이라는 표현이 적당했다. 그리고 이 두 부자들 틈바구니에 끼여서 아주 힘들어했다. 기자로서 딱히 도와줄 건 없고 기사나 하나 써서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실은 기사가 ‘맨발의 박관용’이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내려가 보니까 아예 이 기사를 사무실 곳곳에 도배하다시피 해놓고 있었다. 기사의 제목이 먹힌 건지 아니면 후보의 열정이 통했던지 한 지역구에서 두 명을 뽑는 선거에서 7만여 표를 얻어 김진재 씨와 더불어 당선되었다.
박관용 씨의 기사를 본 서석재 씨도 나만 만나면 자기도 하나 지어 달래서 영 생각이 안 난다고 했더니 이런 건 어떻겠느냐면서 ‘서민의 서석재, 설움 받는 서석재, 서구의 서석재’를 내놓았다. 서씨니까 ‘서’자로 운을 맞췄는데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얼마 뒤 내가 뭐라고 쓰긴 한 것 같은데 ‘맨발의 박관용’만큼은 알려지지 않았다. 서석재 씨 역시 그 해 선거에 당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신입 때부터 줄곧 정치부에서 기자 생활을 했기에 정치인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 관제 야당이니 공천자 명단 받아 적기 같은 것은 그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인들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추악한 일도 종종 벌어진다. 협박과 협잡이 존재하고, 간혹 시정잡배보다 못한 행동도 서슴지 않고 벌이는 경우도 있다. 오죽하면 국회 본회의장 기자석에 앉아 취재를 하던 나도 “저 거지 같은 X들”이라는 욕을 해댄 적이 있을까.
밖에서 보는 정치는 분명 그렇다. 이해는 하면서도 대단히 부정적이다. 하지만 내가 국회의원이라서가 아니라,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증폭되고 커지는 나라치고 발전하는 나라 없다. 잘못된 것은 정치인이나 국민이나 엄한 법의 제재를 가해야 옳지, 비아냥이나 조롱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 국회의원은 싸움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들어와 보니 하는 일도 많고 중요하다. 또 작심하고 일하려 들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인이요 국회의원이다. 국회가 열리면 의원회관에 밤새 불이 켜져 있는 방들이 많다. 국민의 격려가 나라를 살린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은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