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Lame Duck)이란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을 일컫는다. 임기 말 레임덕에 시달리지 않은 대통령은 없었다. 이런 가운데 한 학자는 “노 대통령의 레임덕은 이미 지난해 시작된 것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 정권은 몇몇 ‘초강수’를 둬가면서 레임덕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8월16일)과 외교안보 라인 교체(11월1일),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의 ‘추가 신도시 개발’ 발언(11월3일)에 이은 ‘11.15 부동산 대책’ 발표가 대표적이다.
특히 전 후보자의 임기(6년)를 보장하기 위해 청와대는 ‘헌재 재판관 사퇴에 이은 소장 임명’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했다. ‘정권은 바뀌어도 코드는 남는다’라는 비난에도 청와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코드’ 인사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한 집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북한 핵실험(10월9일) 파장으로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무능이 드러났는데도, 노 대통령은 같은 사람을 돌려쓰는 ‘회전문’ 인사나 ‘보은’ 인사의 재연을 고집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자. 추병직 건교장관의 섣부른 ‘신도시 추가 개발’ 발언으로 촉발된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거의 ‘민란’ 수준이다. 오죽했으면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다’는 말이 나왔을까.
이런 가운데, 정기국회 막바지에 이른 11월27일 노 대통령은 전 후보자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그는 다음날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고 말했다. 레임덕을 인정한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선풍기로 황사를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니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코드인사에 대한 집착과 여당에서조차 대통령과 일정부분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레임덕은 더욱 속도를 낼 게 분명하다.
전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안을 둘러싼 대치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여야는 지난 9월29일 본회의에서 일부 법안들을 처리한 이후, 두달동안 단 한건의 계류법안도 처리하지 못한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
시간을 허비하는 가운데 국민은 지칠대로 지쳐 버린 상태다. 현 정권은 현 정권 스스로 레임덕을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불씨가 꺼진 것일까. 아니다. 외교안보 라인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안과 사립학교법, 비정규직법안, 국방개혁법안, 사법개혁법안, 내년도 예산안 처리 문제 등이 일단락된 전효숙 파동의 뒷자리를 메울 것이다.
12월9일, 정기국회 100일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린다.
내년 대선 탓에 올해 정기국회가 17대 국회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현 정권에게나 어울릴만한 레임덕이 국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파행국회’에서 ‘파장국회’로 선회한 셈이다.
지난 11월16일 과학기술부와 기상청의 예산안에 대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심의에서 산하기관장 12명이 불참하는 일이 벌어졌다. 공무로 인한 기관장의 해외출장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병원치료, 대학특강 등 사유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유감을 표명하며 심의를 연기했다. 국회마저 레임덕에 빠진 것일까. 나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국회의 레임덕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이내 사실로 다가왔다.
11월28일 비경제부처에 대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 심의에서 국무위원들이 국무회의를 이유로 대거 불참했다. 동료 의원들은 국회가 생긴 이래 이같은 전례는 없었다고 말할 정도다.
특히 예산과 관련한 핵심부처인 국방부와 행정자치부 장관이 불참했다는 소식에 내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회의 예산심의권은 철저히 농락당했다. 레임덕에 빠진 현 정권이 국회마저 레임덕에 빠지게 하는 ‘노림수’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회 스스로 레임덕을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여권에서는 정계개편 논의가 불붙었다. 정기국회 폐회를 앞둔 현 시점에서는 여당의 붕괴가 가시화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국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으랴.
대통령의 레임덕에다 국회의 레임덕까지, 좌초한 한국호(號)를 구할 선장은 실종됐다. 그렇다고 손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국정표류 책임이 청와대와 여당에만 있는 것일까. 국민이 여야를 가려서 비난할까. 아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청와대를 외면하고 청와대도 여야를 외면하는’, 정기국회 폐회를 앞두고 벌어지는 ‘술래잡기’는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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