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이곳은 한일 분쟁의 뇌관이요 동해의 화약고다. 일본을 향해 배치된 대포, 소총을 든 전투경찰들의 결연한 모습이 긴장을 더한다. 헌정사상 최초로 정당의 당직자 회의를 위해 독도를 찾은 우리의 발걸음도 사뭇 조심스럽다.
정부는 말한다. 독도가 실제로 대한민국이 지배하는 땅이기에 가급적 문제를 만들지 말자고. 이른바 ‘조용한 외교’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일본의 속셈은 다르다. 어떻게든 우리의 감정을 자극시켜 독도를 국제사회에서 분쟁 지역으로 만들고, 우리의 지배를 약화시키려고 틈만 나면 흔든다. 우리 정부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조용함 속에 빠진 것이 있다는 것이다. 단호함이다.
대표적인 예가 1998년의 한일어업협정.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독도를 중간수역으로 집어넣은 것이다. 어로구역 획정에서만 중간수역일 뿐 우리의 영토적 주권을 훼손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는 일본의 교묘한 전략에 말려든 것이다. 하기야 한일협정 당시 한국의 고위 인사조차 “골치 아픈 독도를 폭파해 버리는 게 낫겠다”는 철없는 소리를 했다니 일본인의 눈에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우리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서 던진 발언은 또 얼마나 충격적이던가.
느닷없이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러 우리 국민을 경악케 한 것으로 부족해 자기 임기 중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과거사를 문제삼지 않겠다고 했다. 여당의 원내대표를 지낸 사람은 일본 방문 길에서 한국에서의 과거사 논란은 국내용일 뿐이라고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한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가 막힐 일이다.
이쯤 되면 한일어업협정 당시 일본은 완벽한 사전준비와 해구도(바다 밑 지도) 분석을 통해 어디에 도미나 복어 같은 고급 어종이 있는지를 소상히 파악하고 협상에 임한 데 반해, 우리는 주먹구구로 나가서 기껏 꽁치나 오징어만 잡게 됐다는 얘기도 그럴 듯하게 들린다.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모씨는 “내륙 출신인 장관이 바다에 대해 뭘 알겠느냐”는 국회의원들의 지적에 “나도 바다와 관계가 깊다. 회를 즐겨 먹기 때문이다”라는 개그맨 수준의 답변으로 헛웃음을 짓게 하더니 “일본 해수부 장관과는 평소 형님 아우 하는 사이이니 아무 걱정 마시라”고 큰소리치며 도쿄로 떠났었다. 쯧쯧. 공과 사 구별도 못하는 수준이니 협상에서 박살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 하긴 협상팀들이 쌍끌이 조업(배 두 척이 그물 하나를 함께 끄는 어로 방식)이 무슨 말인지조차 몰랐다니 그들을 믿고 협상 테이블만 눈이 빠지도록 바라본 우리 어민들만 불쌍할 뿐이다.
현재의 주둔 병력은 40명 정도. 그 이전에는 6.25 전쟁 당시 해병대로 참전했던 홍순칠 씨 등 혈기 있는 울릉도 청년들이 독도에 일본인들이 출몰한다는 소식을 듣고 1953년에 ‘독도수비대’를 결성, 독도를 지키기 시작했다. 3년 후인 1956년 여러 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순시선이 접근하자 사격과 동시에 박격포를 쏘았고 이게 국제 문제로 비화되면서 정부는 독도수비대를 철수시키고 경찰인 독도경비대가 들어왔다.
돌아오는 길에 울릉도에서 당시 수비대원이었던 어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너무도 고맙고 그 애국심이 존경스러워 깊이깊이 머리를 숙였다.
일본의 망언이 있을 때마다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분노에 몸을 떨지만 정작 독도는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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