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를 찾았던 시절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6-12-13 18: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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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진 영 의원 내가 처음 강화도에 간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벌써 40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 선생님을 따라 몇몇 친구들과 함께 강화도에 갔다. 우리는 선생님께서 왜 우리를 그곳에 데려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그리고 강화도조약을 막 배우고 난 뒤였다. 그 시절만 해도 빈곤은 우리의 일상을 짓눌렀던 때였다. 사람들은 암담한 현실에 절망했고, 우리의 어린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결핍과 우울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가난하고, 우리나라는 힘없는 약소국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강화도를 자주 찾았다. 그저 강화도가 좋았고 시원한 바다 경치가 좋았다. 지난날의 쓰라림도 잊은 듯 강화도는 항상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었고, 서울에서 가까운 곳, 그곳에 가면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 과거는 물론이고 현실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해 한없는 기대감을 지닌 큰 눈망울의 소년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곳에 서서 내가 마주하는 또 다른 나는 어느 면에서는 슬픔이었고 아픔이었다.

그러나 내가 서 있는 현실의 땅을 살펴보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만남은 필요한 일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막연한 미래에 모든 꿈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려놓은 그림에는 짙푸른 색을 입히기도 하고 때로는 하루 종일 하얀 종이로만 남겨놓아야 했던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 앞에 펼쳐진 황해 바다의 파도를 바라보면서 나의 과거와 현실의 고통을 드러내는 한순간의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기에 나에게 강화도의 바다는 어머니의 가슴과도 같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의 친구들은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 중에 유난히 가난했던 친구는 점심 도시락을 가져올 수 없었고, 그런 친구는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서 공이나 차야 했다. 물론 우리들 주변에 부유한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친구들은 우리와는 거리가 멀었고 그러다 보니 우리끼리만 어울려 지냈다.

그런 우리에게도 가난은 역시 불편했다. 가난이 힘겹기도 했지만 그래도 참아야 하는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러한 현실이 울분으로 분출될 때도 있었고, 체념으로 끝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가난에 대한 생각을 끝내 떨칠 수 없었고, 굳은 잠재의식이 되어 마음속 깊은 곳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가난이란 무엇인가? 왜 어떤 사람은 풍요롭게 살고 또 어떤 사람은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야만 하는가! 그러한 생각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가난 그 자체보다 가난에서 비롯되는 불공평함이 우리의 아픔과 분노를 가져오는 원인임을 알 수 있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땀 흘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착한 시골 농부에게 돌아오는 것은 고작 배고픔이었다. 반면에 하는 일도 없이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을 보면 분노가 들끓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불공평 그 자체가 분노와 저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 시절의 우리에게 가난은 불평등의 상징이었고, 가난했기 때문에 그 불평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가난에 대한 극단적인 원망을 담고 살아야 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머물었던 이 세상의 곳곳들, 학교며, 집이며, 친구들조차도 가난에 대한 원망을 달랠 수는 없었다. 단지 순간적으로나마 그것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현실에서 그냥 훌쩍 떠나버리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강화도는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는 차비도 비싸지 않았고 거리도 멀지 않아 다녀오기가 수월했다. 푸른 숲, 넓은 모래사장 그리고 바다 저편으로 몸을 던지면 세속의 불안이나 두려움은 사라졌다. 막혔던 내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불평등에 대한 원망도, 가난에 대한 고통도, 현실에 대한 아픔도 강화도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섞여 흩어져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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