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경제도 우리를 한없이 우울하게 했다. 자립경제를 이룩하기 위한 온 국민의 몸부림이 힘겹게 펼쳐지고 있었지만, 그 효과에 대한 기대감은 별로 높지 못했다. 당장 그 경제의 여파가 우리 삶의 현실 속에 스며들어 가난을 숙명으로 여기도록 어릴 때부터 훈련시켜 놓고 있었다.
그 시절 문화도 우리 젊은이들의 우울함을 치유해 주지는 못했다. 전통문화는 한없이 낯설었고, 서구의 외래문화도 우리와는 도저히 마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결국 우리는 문화에서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에서 우리의 자리는 어느 곳에도 마련될 수 없는, 이른바 불명확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었다. 이런 혼돈과 갈등, 대립에 맞서 우리는 시위 대열에 참여해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목이 터져라 외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외침만으로는 결코 자유도 정의도 민주주의도 풍요로움도 이룩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감만 더해갔다. 우리 젊음에 미래를 가져다줄 그 어떤 의미나 수단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불가해의 정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에 대한 의문이 내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정치란 무엇이며 우리가 바라는 가장 옳은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 정치는 ‘모든 사람에게 안전과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 정치는 ‘각자에게 자기가 되고 싶은 그 자신을 이룩하게 하는 조건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나는 꼭 그러한 정치가 이루어져야 정치다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에 집착할수록 우리의 현실정치는 나에게 끝없는 의문만을 던져주었다.
그 시절에는 권력을 잡은 사람도,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도 원래의 정치와는 너무 먼 거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권력을 잡은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는 권력만이 전부였다. 결국 권력을 얻어 스스로의 영광과 권위의 자리에 군림하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권력만을 잡으려는 사람에게는 국민이 있을 수 없다. 정의도 없다. 단지 자기의 영달만이 있을 뿐이다. 자기를 내세우면서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패거리를 만들고 세력을 부식하면서 그렇게 정치를 행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정치와 정치가들이 싫었다.
지난 30여 년간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과학기술, 문화, 예술에서도 많은 것을 성취했다. 하지만 정치만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치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 적대적 대결, 비민주, 불합리, 비인간화 등 이런 모순과 갈등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과 한계로 인해 나는 이상적인 정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이런 의문에 잠기게 될 때마다 결국 귀착되는 것은 정치의 기본 목표에 대한 문제였다. 가장 좋은 정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것의 참 모습을 그려내는 일이 나에게는 하나의 과제였고, 이보다 더 한층 중요한 것은 그것의 실현 방법이었다. 우리의 정치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어디에 있는가? 거듭되는 번민 속에서 우리 정치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로 내 관심은 자연스럽게 옮겨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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