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12월9일 국회의장 직권상정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사학법을 강행처리하자, 한나라당은 13일부터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등을 돌며 장외투쟁에 들어갔다. 그러자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민생법안과 예산안을 내팽개친 채 밖으로만 돈다고 비난했다.
당내에서도 장외투쟁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지금의 어떤 대선주자는 “장외투쟁에만 매달리고, 민생은 돌아보지 않고, 정치적 욕심만 채우는 구태정치는 수권 정당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다”고 했다. 자기 지역구 역전 앞의 소규모 홍보전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어떤 의원은 “사립학교법이 국민 60%의 지지를 받는데, 한나라당이 왜 불리한 전선에 뛰어들어 싸워야 하는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고 했다.
만일 우리가 그때 당 안팎의 비난여론에 밀려 슬그머니 원내에 복귀했더라면 그 후 실제로 사학법 개정 여론을 확산시켜 나갈 수 있었을까?
나는 부정적으로 판단한다. 아무리 옳은 얘기를 원내에서 주장한다 해도 여당에서 무시하거나 맞받아 쳐버리면 국민들 눈에는 ‘시끄러운 정쟁거리’의 하나로 전락해 버리기 일쑤다. 더구나 말이 좋아 ‘원내·외 병행투쟁’이었지 실제로는 ‘추운데 장외투쟁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장외투쟁이냐’고 푸념했던 일부 인사들이 과연 확고한 사명감을 가지고 원내에서 사학법 개정 노력을 계속했을지 나는 의문이다.
내 생각으로는 오히려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장외투쟁을 펼친 결과 사학법의 핵심내용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다수 국민들에게 적어도 ‘야당이 저렇게까지 나오는걸 보니 사학법에 뭔가 문제가 있긴 있나 보다’라는 분명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고 본다.
최근 사학법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아도 1년 전 결과에서 역전되어 사학법 개정에 대한 찬성 여론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민심을 천심으로 여겨야 하는 정당의 입장에서 여론동향은 매우 중요한 고려 요소다. 하지만 나라의 근간을 뒤흔들 핵심사안에 대해서조차 당장의 여론조사 결과를 추종하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비판한 포퓰리즘(대중 추수주의 혹은 인기 영합주의)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정부, 여당, 좌파진영은 방송, 인터넷매체, 포털, 영화 등 다양한 선전매체를 동원해 대대적인 여론몰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전체 사학 중 2.4%에 불과한 비리 사학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인 양 대대적으로 부각시킨 각종 시사 프로와 ‘공공의 적 2’ 같은 영화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나라의 근간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는 당장의 여론조사 결과에 흔들리지 말고 당의 침로(針路)를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는 실례가 또 있다.
2005년 연말에 사학법을 놓고 여야가 맞섰다면 2004년 연말에는 국가보안법을 놓고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열린우리당은 4대 개혁입법의 핵심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하게 밀어 붙였고 국회 밖에서는 1천여명의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농성단이 26일간 거리 단식농성을 벌이며 여당 의원들을 독려했다.
그런데 당시 한 여론조사(한국리서치)에 따르면 ‘국보법 완전 폐지’ 의견 9.8%, ‘국보법 폐지 후 형법개정 보완’ 의견(열린우리당 당론) 29.2%, ‘국보법 폐지 후 대체입법 제정’ 의견 18.0%, ‘국보법 유지 위에 인권침해조항 개정·보완’ 의견(한나라당 당론) 30.9%, ‘국보법 현행 유지’ 의견 5.8%로 나타났다.
대별하면 국보법 폐지를 전제로 한 의견이 57%, 국보법 유지를 전제로 한 의견이 36.7%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때 의원 수에 압도당하고(당시는 17대 총선 직후라 열린우리당이 압도적 다수당이었다) 시위대의 위세에 주눅 들고 무엇보다 여론조사 수치에 마음이 흔들려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정치인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나라의 근간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한다. 애매모호한 태도가 아니라 분명한 자기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러고 나서 여론조사의 추이에 따라 말이 달라져서는 안된다.
이제 명년 초부터 본격적인 대선후보 검증이 시작될 것이다. 도덕적 약점에 대한 부분, 미래지향적인 정책공약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국가 정체성과 당 정체성에 대한 부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추웠던 겨울, 나라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우리 당의 투쟁에 기꺼이 함께 해주었던 당원 동지들께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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