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군(聖君) 명군(明君) 폭군(暴君)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1-14 19: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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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근(노원구청장) “흔히 역대 최고의 성군(聖君)은 세종대왕이시고… 그분에 버금가는 치적(治績)을 남긴 분은 정조대왕인데 그분을 명군(明君)으로 꼽지요… 세종은 한글창제로 큰 치적을 남기시고 정조는 개혁정치에 큰 업적을 거뒀으니까요….”

그러나 작금(昨今)의 쟁점코드는 아무래도 광해군(재위:1608~1623년)이 과연 폭군이냐… 명군이냐 일거다. 그렇다면 과연 두 견해를 둘러싼 각각의 그 근거가 무엇이더냐?

“광해군의 폐모살제(廢母殺弟)사건이 폭군설의 가장 큰 이유이지요… 계모 인목대비를 왕비에서 폐하고 이복형제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귀향 보내 죽였지요.”

그렇다면 광해군은 왜 그와 같은 패륜(悖倫)을 저질렀을까?

“선조는 후궁 공빈 김씨와의 사이에서 임해군과 광해군을 두었어요… 그런데 선조의 정비(正妃) 의인왕후가 자식이 없고 임해군은 자질이 부족하여… 광해군이 세자로 부각되었어요… 그런 와중에 정비 의인왕후는 죽고 계비 인목대비가 덜컥 영창대군을 낳았어요… 그러자 광해군(光海君)은 세자자리를 위협받게 되었지요… 그러나 임진왜란 직후 부랴부랴 광해군이 세자가 되었고 전란 후에는 군왕(君王)이 되었어요… 그 후로 광해군은 그것 때문인지 인목대비를 폐서인(廢西人)시키고 영창대군을 죽인거지요.”

그렇다면 광해군 명군설(明君說)의 근거는 무엇인가?

광해군 명군설의 핵심은 아무래도 명·청 사이에 중립외교(中立外交)를 표방한 점에서 찾아야 한다.

“당시 중국 대륙의 동북부 만주일대에서 1616년에 여진족장(女眞族長) 누르하치(靑太祖)가 후금(後金)정권을 세웠고… 그 누르하치가 죽고 아들 황태극이 1636년 황제(皇帝:청태종)에 오르고 국호를 청나라로 바꾼 다음에 명나라를 공격하였지요… 다급해진 명나라는 조선에 원군을 요청하였는데… 그때 조정에서는 파병여부를 둘러싸고 의견이 갈렸지요… 파병을 주장하는 자들은 명나라는 부모지국(父母之國)이고… 임진왜란 때 원군(援軍)을 보내줬기 때문에 그에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파병 반대론자들은 청나라 세력이 커져 머지않아 명나라가 멸망할 텐데… 자칫 원병을 했다가 나중에 그 화근(禍根)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는 거고….”

여하튼 당시 광해군(재위:160 3~1623년)의 소신은 파병거부론이었지만 결국 조정 대신들의 원병론(援兵論)을 꺾지 못해 강홍립을 오도도원수(五道都元帥)로 삼아 1만3000명을 파병하고 말았다.

“후일 1636년에는 청나라가 조선을 쳐들어와 그 원병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지요.”

그 사건이 바로 병자호란이라는 것은 이미 아는 바이다.

병자호란의 항복조건은 정말 굴욕적이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인질로 보낼 것과 명나라 고명책인(誥命冊印)을 청나라에 바치고… 성을 신축하거나 쌓지 말 것…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벌할 때 원병을 하고… 제신(諸臣)과 혼인을 맺을 것… 조선포로가 도망가면 속환(贖還)할 것… 청나라에 일정한 세폐(歲幣)를 바칠 것 등등….’

“이때 청나라로 50만명이 끌려갔어요… 그때 다시 돌아오려면 소위 속환 대가를 내야했어요… 돌아와도 속환사녀(贖還士女)들은 정조(貞操)를 잃었다며 구박을 받았어요.”

여하튼 일부 사학계에서는 당초 광해군의 주장대로 명·청간에 중립외교를 취했다면 그런 비극은 없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여간 광해군의 명군론(明君論)이 주장하는 대응논리는 또 다른 무엇이 있느냐?

첫째는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축출되었기 때문에 후세의 인조실록은 승자가 기록한 것이라 그의 패륜을 크게 부각시켰고…’ 둘째는 ‘1592년 임진왜란 초기에 세자로 책봉돼 7년 동안이나 조정의 분조(分朝)를 이끌고 전투를 직접 지휘하는 등 전공(戰功)을 세웠고…’ 셋째 ‘임진왜란 후 폐허가 된 창덕궁과 창경궁을 영건하고 경희궁 등을 조영하고 대동법(大同法:공물을 미곡으로 통일)을 실시하는 등 큰 공적을 남겼는데도 그런 업적이 파묻혀 있고…’ 넷째는 ‘태종 방원의 난으로 형제들을 죽이고 세조는 조카를 죽이고 영조도 자기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였는데도 그들한테는 폭군의 칭호를 붙이질 않고….’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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