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통일을 말하기에 앞서 ‘통합’이라 말하고 싶고, ‘연대적 공존’이라고 말하고 싶다. 북한의 체제나 그 미래는 북한 주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자유 의지에 의하여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위한 상황과 조건을 오히려 우리가 마련해 줌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대한민국 국민들과 공존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남과 북이 하나로 어울리는 것이 참된 민족의 일체감적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이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북한 주민들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어야 비로소 의미 있는 통일 지향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통일이라는 말보다는 통합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그것은 상호 체제를 인정해 주고 그 선택을 존중해 주는 현실 상황을 전제로 하면서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함께 손잡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호 체제를 인정해 주고 서로 그 선택을 존중해 주어야 하며, 양자가 특별한 관계로서 공동의 발전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남과 북이 통합의 연대의식부터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의 통합은 상호 인정에서 비롯될 수 있다. 먼저 북한이 우리를 인정하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누가 누구를 먼저 인정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상호간에 실체로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인정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먼저 북한을 인정해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7·4공동성명 이후 남과 북의 상호간에 각 체제의 인정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상호 인정만으로 일이 잘 진척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면에서 그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구호였거나 나아가 전략적인 의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제의 상호 인정은 단순히 말의 표현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살 수 있어야 하고, 함께 사는 것이 여러 면에서 좋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상호 인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한 형제로서 손잡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비로소 통합의 가능성도 열릴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북한 주민이 남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며 그들을 돕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절감해야 한다. 그들이 행하려는 그 일을 내가 인정해 주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북한 주민이 알게 될 때 북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는 북한 주민은 내 형제일 수 있지만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통치세력은 우리에게 적대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이들 양자를 구분해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 없지 않다. 김정일 체제와 북한 주민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으로는 가능한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 주민이 지금의 김정일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거나 그것에 대항하는 이른바 ‘지하 정부’를 세울 정도로 저항의 불씨를 갖는다면 몰라도 지금의 상황에서 이러한 기대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기대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기존 체제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과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 새로운 변화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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