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튼 이제 우리 일행은 일교(日僑)를 통해 누각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경회루각(慶會樓閣)을 떠받치고 있는 석주(石柱)가 저렇게 많지! 무려 48개가 조형적으로 연출되어 있으니….”
그 대오정렬(隊伍整列)이 마치 군왕(君王)이 들어갈 때 영접 사열(査閱)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조형 석주들은 무엇이더냐?
그 큐레이터의 강론은 이 우학(愚學)이 그 지혜를 감당할 수 있게 해줬다.
“누각1층 돌기둥은 내석주(內石柱)가 24개, 외석주(外石柱)가 24개로 48개가 있지요… 경회루(慶會樓)는 태종 때 건립하고 성종 때 크게 보수하였어요… 그 때 기둥면에 용문양(龍紋樣)을 새겼지요.”
그래서 당시 보름날이면 경회루각이 연못에 비춰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오랫동안 방치돼 오다가 고종 때 다시 복원되었지만 용문양을 넣지 않아 지금은 그저 밋밋하지요.”
그러나 그 조형석주가 과연 무엇을 폭로(暴露)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건물의 석주(石柱)를 잘 살펴봐요! 외곽기둥은 네모지고 안쪽기둥은 원주(圓柱)이지요… 옛날 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고 생각한 거죠… 여기서 하늘은 신의 공간이고 땅은 인간의 공간을 뜻하지요.”
그 큐레이터의 설명은 동행한 노영감을 아주 감동시켰다.
아마도 그 영감은 경복궁을 그렇게 많이 들렀지만 막상 누각에 올라가기는 처음이라며 연신 고마워했다.
드디어 우리 일행은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마루바닥이 다층(多層) 구조로 돼 있는 게 아닌가!”
통상 누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마루구조이다.
“우선 마루바닥을 잘 살펴봐요! 구조가 3단 누(樓)마루이지요… 평마루마다 고저차(高低差)를 두었지요… 중심마루를 내진(內陣), 바깥을 외진(外陳) 그리고 그 중간을 중진(中陳)이라 말하지요.”
그렇다면 왜 삼층(三層) 마루형식을 취했을까?
“경축연회를 할 때 내진구역(內陳區域)은 임금이 서고… 중진(中陣)에는 고위관리들이 외진(外陣)에는 하급관리가 서지요… 유교적 신분질서를 좌석품계에 맞춘 거지요.”
이제는 경회루의 건축구조 얘기는 여기서 그만두고 잠시 답사 보너스(bonus)로 그와 연관 있는 천기야화(天氣野話) 하나를 털어놓겠다.
고사성어 ‘용호상박(龍虎相搏)’은 기우제 처방전이다.
“우선 하늘이 비를 내려주지 않으면 남대문(숭례문:崇禮門)은 닫고 북문(숙정문:肅靖門)은 열지요… 바로 북쪽의 음풍(陰風)이 비를 몰고 온다는 거지요… 그래도 가뭄이 계속되면 북악산·삼각산·남산에서는 기우제를 올리고… 한강에서는 용제(龍祭)를 지내지요… 이때 제사장은 수룡(水龍)에게 비를 달라고 조르지요… 그러면서도 나무 호랑이를 강물에 던져 용의 성깔을 돋우지요… 그렇게 하면 비바람이 일거든요.”
바로 용호상박은 수룡(水龍)과 호랑이 간에 싸움을 붙여 비를 내려주게 하는 기우제 풍습에서 유래한 거다.
“그렇지만 용호상박의 기우제로도 정 비가 오지 않으면 임금으로 제주(祭主)를 격상시키지요… 그리고 경회루·창덕궁·모화관(慕華館)등 연못에서 지내는데… 이때는 물독에 도마뱀을 넣어 연못에 띄우지요… 그러니까 용의 화신이 도마뱀이라고 믿은 거죠… 실제로 청동룡(靑銅龍)이 경회루 연못에 잠겨있는데 그것은 화마(火魔)퇴치와 함께 가뭄 때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서 라지요.”
사실 옛적부터 백성들은 ‘군주(君主)’가 하늘과 대화 소통(疏通)하는 주재자(主宰者)라고 믿었다.
그러하니 백성들은 임금이 부덕(不德)하면 하늘이 비를 내려주지 않아 농사를 망친다며 원성을 보냈다.
바로 ‘임금은 권력과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뜻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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