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위기의 역사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2-01 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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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한나라당 노병위원장 1차 북핵 위기 때는 미국이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흑연감속원자로를 동결시키고 경수로로 대체해주는 대신, 북한은 원자로 건설을 중단, 재처리하지 않으며 방사화학실험실을 폐쇄하는 등 몇 가지 제안이 따른 평화적인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졌지요.

그러나 2002년 10월 시작된 제2차 북핵 위기는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이 제기되면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 프로그램 시인으로 불거져 미국 내 강경파를 중심으로 대북 군사옵션 채택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심각한 국면으로 치달았습니다. 북한이 1차 위기 때는 핵무기 개발 의도를 부인하면서 핵 개발을 중단한다고 했지만 2002년 10월 시작된 2차 북핵 위기 때는 북한이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양상으로 전개시켰다는 점입니다.

지난 9.11 사태로 미국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와 이란에 이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연두교서에서 밝혔습니다. 그러자 불안해진 북한 김정일은 고농축우라늄(HEU) 핵 프로그램을 시인하고 말지요. 그러면 미국에서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단계를 높여 2003년 급기야 핵 연료봉을 재처리하는 데 성공했다는 발표를 합니다. 핵 연료봉을 재처리하면 바로 핵연료인 플루토늄이 되어버리는 심각한 위기상황인데도 부시 대통령은 동상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사실 김정일은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며 부시 대통령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였지만, 김정일 못지않은 벼랑 끝 전술가인 부시 대통령이 꿈쩍도 않자, 2005년 드디어 핵보유를 선언하고 나섰지요.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핵실험 강행 직전 단계, 즉 유사시에 핵을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을 발사해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또 미국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드디어 작년 10월 김정일 입장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내세울 카드인 핵실험을 강행한 것입니다.

이제 북한은 추정키로 6-10발 정도의 핵을 가진 핵보유국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경량화 소형화하는 데 성공하고, 10년 내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을 개발한다면 미 본토까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향후 소형화된 핵무기를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탑재해서 미국이든 다른 대륙이든 타격할 수 있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 말란 보장은 없지요. 자, 이제 북한이 핵을 보유했어요. 미국의 입장에서는 핵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서 전쟁을 치르는 방식과, 또 다른 핵 페기를 위해서 진일보된 평화안을 도출해야 하는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북핵 위기 과정에서 보듯 미국은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북핵 관련해서 최종적으로 웃을 수 있는 승자는 불행하게도 바로 김정일입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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