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을 피해자로 방치말라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3-12 20: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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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헌(열린우리당 의원) {ILINK:1}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로 양국간 우정이 한껏 고조되었던 2002년.

일본의 영화감독 사카모토 준지가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영화화한 ‘KT’가 국내에 상영되었다.

‘KT’는 당시 박정희의 정적 김대중을 암살하라는 작전명이었다. 이 영화는 그해 열린 제52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 본선 진출작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이처럼 우리 현대사가 영화의 흥미로운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사건을 다룬 ‘그때 그사람’과 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표적이다.
이런 영화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팩트에 기반해 재구성한 ‘논픽션’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현대사의 가려진 진실에 목말라하는 우리 관객들로서는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까지 영화일 뿐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영화의 소재로 그친다면 비극이다. 우리 사회는 참여정부 초기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미래 공존을 위해서라도 진실규명과 화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낸 바 있다.

지난 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대중 동경 납치사건에 대한 분명한 진상규명과 결과 발표를 촉구했다.

2005년 2월 국정원 과거사위가 발표한 ‘7대 우선조사 대상’ 가운데 유독 이 사건만이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과거사 진실 규명을 강조해 온 정부의 태도로 볼 때 놀랄 만큼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DJ 동경납치사건’은 한일 양국의 정보기관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만큼, 관련자의 직접 진술을 확보하기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과 일본 정부가 관련 문서와 기록 공개에 적극 협력한다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에는 크게 어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결국, 문제는 현재 정부당국의 의지와 태도의 문제이다.

과거사 조사위에 제한적인 정보와 기록만 제공한다면 애초의 사회적 합의를 무너뜨리고 또 다른 사회적 갈등만 야기 시킬 뿐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행여 발생할 한·일간 외교문제가 걱정이라면 역사를 대하는 성숙한 자세를 지닌 우리 국민의 수준으로 볼 때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가뜩이나 과거사만 나오면 옹색해지는 일본의 처지를 모르는바 아니다.

최근에도 아베 정권은 위안부 망언으로 위선(僞善) 국가라는 세계인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오명을 벗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규명에 협력하는 것이며, 밝혀진 사실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개입 사실이 진실 규명의 핵심인 만큼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오는 실정이다.

박 전 대표는 이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그러한 용기와 결단으로 사회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박 전 대표는 이 사건에 대한 분명한 진실규명만이 진정한 화해와 미래 공존의 전제이며, 어떠한 정치적 판단도 배제되어야 함을 천명해야 한다.

군사독재가 정적에게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김대중 동경납치사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밝혀내야 할 우리의 현대사이다.

국민의 주권과 자존심의 문제임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 과거사위의 진실규명 노력을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간의 성과가 제대로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는 ‘DJ 납치사건’에 대해 보다 집중적인 조사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양심세력들의 촉구를 ‘정치적 요구’ 수준으로 오판하면 안 된다.

헌정사 최초로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루어 낸 최고 통치권자를 숨겨진 과거사의 피해자로 남겨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KT’가 영화의 소재로써 흥미와 감동을 줬다면, 진실규명은 화해와 전진, 미래와 상생을 줄 것이다. 감춰진 과거는 끈질기게 현재와 미래를 괴롭힐 것이며, 밝혀진 과거는 과거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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