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각계에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극소수 일류대학 출신들이 강력한 세력을 구축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같은 사회 조류를 무시할 수 없어 어떻게든 내 자식만은 엘리트 집단에 끼워 넣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바람 또한 얼마나 간절한가. 오로지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학벌이라는 신분 보장 보증서를 얻기 위해 그 말조차 황당한 ‘입시 전쟁’이라는 몸살을 온 나라가 해마다 치러내야 할 만큼 우리 사회의 병폐는 계속 대물림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청소년기를 다 바쳐 죽기 살기로 들어간 대학이 과연 반듯한 학문의 전당으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의 장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행한 ‘한국의 대학생’에 보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주당 평균 학습 시간이 2시간 이하인 경우가 무려 58퍼센트나 된다고 하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대학생들이 공부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의 조사 결과에서도 하루 한 시간도 공부하지 않는 대학생이 무려 51.1퍼센트나 되었고, 더 한심스러운 것은 대학생 열 명 중 한 명은 대학이라는 곳이 입학만 하면 졸업할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정부는 ‘지식 기반 사회에 대비해 대학 교육의 질 향상’을 언급하며 개혁을 외쳐왔지만, 대학의 현실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전반적으로 대학생들이 수업에 관심이 없고, 대학 교육을 받을 만한 기초 학력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에서조차 기초 수학, 기초 한문, 기초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 때문에 교수들이 강의를 못 할 지경이라니 도대체 말이 되는 얘긴가.
교육의 위기는 곧 망국의 조짐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우리 교육의 총체적 위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너무나 심각한 문제이다. 학문 연구의 선봉에 있는 최고 교육기관인 대학이 자정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서야 어찌 유능한 인재나 일꾼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학생은 공부를 하는 것이 본분이다. 제 할 일을 하지 않는 학생들은 유급을 시키고 졸업을 늦추며, 제대로 공부하는 학생들만 소정의 학점을 이수할 수 있게 하며, 대학별 특화를 추진해 사회의 수요에 맞는 인재를 키워내는 방책이 동시에 강구되어야 한다. 공부가 부족하여 자격이 미달되어도 버젓이 학사모를 쓸 수 있는 부실한 학사 관리부터 확 뜯어고쳐야 한다.
국가 간 무한 경쟁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며 인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 속 빈 강정을 양산하는 이 나라의 교육은 우리의 부실한 국가 경쟁력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개개인의 경쟁력이 부족한데 어찌 국가 경쟁력이 건실하기를 바라겠는가. 그간 인문학과 순수과학 등 기초학문을 무시해 온 역대 정권의 정책은 앞으로도 20년 못 가 인력 부족으로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대학생들은 제대로 된 선비정신을 되찾고 학문에 정진하며 자신이 이 나라와 이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너무나도 절실한 요구이며, 그 길만이 이 나라의 미래를 보존하는 길이다. 대학생들이 학문 연구 과정은 생략한 채 달랑 졸업장만 받고 사회로 나오는 악순환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일류대학을 다녔어도 젊은이들이 속 빈 쭉정이가 되어 사회로 나와 긍정적 가치라곤 무엇 하나 생산하지 않는 학벌 병의 편협한 가치관에 묻혀간다면, 우리에겐 정말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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