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의 최고 단계인 대학에 들어가는 입학시험은 단 한 번의 수학능력 평가로 고등학교 3년 과정을 평가하고 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어떻게 공부하고 어떤 발전 과정을 밟았으며 무엇을 잘 하고 또 무엇이 부족한지에 대해서는 아예 처음부터 관심이 없다. 대학에 가려는 사람은 많고 대학 문은 좁으니 적당한 기준을 가지고 학생들을 추려내겠다는 의도밖에는 없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을 평가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였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라는 단 몇 번의 시험으로 학생의 실력과 성실성을 평가한다. 공부하는 과정에 학생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 얼마나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해왔는지 등에 대해서는 평가할 아무런 근거나 기준이 없다. 물론 요즘에는 수행평가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이 제 역할을 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한 개인에게 대학 입학 여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국인에게 명문대학 졸업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한 번이라도 이 땅에서 입학시험을 치르고 그 결과에 마음 졸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 한 번의 평가로 모든 게 결정되는 입학시험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평가 시스템인지 알 것이다.
미국만 해도 우리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SAT뿐 아니라 고등학교 성적과 특별활동 내용 등을 참고하여 학생을 선발한다. 그 동안 어떻게 공부해왔고 어떤 과목에 소질이 있으며 어떤 부분에 취약한지 그리고 특별활동이나 봉사활동은 어떠했는지 등 한 학생이 3년이라는 과정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두 살펴본 후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학능력시험인 SAT에만 목숨을 거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자연히 좋아하는 공부, 재미있는 과외활동에 충실하는 일도 필요하고 중요해진다.
최근 우리나라도 대학 입학 제도가 많이 달라지고 있는데,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진로를 결정하는 방식에 좀 더 질적인 변화가 따라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수히 노력해왔지만, 그것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놔두고 곁가지만 바꾸려고 해왔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대학부터 바뀌어야 한다. 대학은 가만 놔두고 입시제도나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만 이리저리 뜯어고쳐 본들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결과 중심의 평가 시스템을 과정 중심의 평가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대학 입학시험만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인을 뽑는 시험도 모두 바뀌어야 한다. 한 번 혹은 두어 번의 시험으로 한 사람의 실력과 적성을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런 시험은 수험생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해 선발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모집 정원을 초과하는 나머지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 경쟁에서 승자 패자가 생기는 것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나머지 인생이 결정되고 그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사는 제도의 불합리함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서열화된 사회의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입학시험에 목을 매는 일도 없어야 한다.
경쟁과 선택의 기회가 단 한 번에 국한되지 않고, 한 번의 시험 결과보다 그 일을 위해 준비하온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 시스템을 세우며 경직된 틀에 자신을 억지로 꿰맞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생 계획을 세우고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교육 시스템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전문 대학원 제도가 그런 돌파구를 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만,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상황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시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야말로 21세기에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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