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고도(古都)로 (1)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3-15 16: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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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변호사) 譯 케스티븐(Kesteven) 여학교에서 마가렛은 화학선생 미스 케이에게서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녀는 미스 케이의 온후한 인품, 화학에 대한 정열 그리고 지식을 전달하는 능숙함에서 화학에 빠지게 되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려고 결심한 것도 미스 케이의 영향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E때에는 신뢰할 만한 선생의 발언이나 태도로 평생이 결정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고지식하며 한 가지 일에 집착하는 타입의 마가렛에게 미스 케이의 존재는 큰 영향을 미쳤다.

마가렛은 화학에 깊은 흥미를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법률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알프렛이 그랜덤의 치안판사로 임명되어 연간 4회 개최되는 그랜덤 분기 법원의 판사로 일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마가렛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선거를 도운 것처럼 아버지의 공적생활에도 끊임없이 관계해 왔다. 아버지가 재판관이 되고부터는 재판을 방청하는 것이 그녀의 즐거움이 되었다.

검사가 범죄를 구성하는 요건을 흐르는 듯한 변설로 지적해간다. 그에 대해 변호사가 반론을 한다.

검사의 논리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여 상대방의 가슴팍에 꽂히는 말을 토하고, 무수한 판례에서 골라낸 법률의 한 조문이 결정타를 가한다. 교묘한 법 해석으로 상대방의 논리를 분쇄한다. 이 논리와 논리의 싸움에 마가렛은 지적 흥분을 느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기 위한 준비를 하던 마가렛은 법률을 선택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망설이기 시작했다. 법원에서 맛본 흥분이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자신에게는 법률 편이 맞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제 와서 전공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런 고민에 빠졌을 때 아버지가 지구(地區) 재판소 판사인 노먼 위닝을 소개해 주었다. 아버지는 딸의 장래에 관해 충고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내었다. 그만큼 딸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위닝은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후 법조계로 전향했다. 위닝은 젊은 마가렛에게 인생은 선택의 갈래가 많은 편이 좋다고 설득했다. 장래 설령 법률부문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있어도 지금 다른 분야를 연구해두는 것은 인간의 폭, 사물을 보는 시야를 넓히게 한다는 것, 법률에는 과학 지식을 필요로 하는 문제도 많다고 위닝은 말했다. 마가렛이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려고 결정한 것은 이러한 충고 덕분이었다.

마가렛이 대학 진학을 결심한 것은 16세의 학기말이었다. 1년 후 17세에 옥스퍼드 대학 서머빌 칼리지(Somerville college)에 입학할 것을 결심했다. 당시 여학교 학생이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는 것은 18세가 보통이었으나, 우수하면 17세라도 시험을 치룰 수 있었다. 마가렛이 1년 일찍 대학 입학을 바란 것은 전쟁이라는 비상 시에 고교에서 느긋하게 있을 수는 없다는 기묘한 초조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장애물이 가로막았다. 케스티븐 여학교 교장 도로시 길리스가 반대했던 것이다. 마가렛이 옥스퍼드에 진학하겠다고 말씀드리자 길리스 교장은 즉시 난색을 표했다. 마가렛이 아직 옥스퍼드에 들어갈 만큼의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입시에는 라틴어가 필수과목인데, 마가렛은 아직 라틴어를 배우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도 여전히 옥스퍼드 대학의 입학식, 졸업식에서는 학생의 라틴어 인사에 대해 교수가 라틴어로 훈시하는 의식이 남아있을 정도로 그 대학에서 라틴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서구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바탕에 있는 라틴어 지식이 필요 불가결하다는 것이 대학의 확고한 방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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