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남는 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내가 조교를 맡은 시간 중 새벽반은 수강생이 350명이나 되는 ‘성문핵심영어’ 강의였다. 새벽 첫 시간이라 마음만 먹으면 강의 시간에 앞서 얼마든지 예습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제의했다.
“영어 공부할 때 단어와 숙어 외우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내일부터 중요한 단어와 숙어를 정리해줄 테니 필요한 사람은 30분만 일찍 나오소.”
전에 대학생 형들을 상대로 과외교사를 할 때 정리해둔 게 있어 강의 준비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학생들이 그 새벽에 내 강의를 들으러 30분이나 일찍 나와 줄 것이냐 하는 데 있었다. 다음날 새벽 몇 명이나 나올까 마음을 졸이며 강의실로 가보니 놀랍게도 수강생의 90퍼센트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매일 새벽 다섯 시, 본 강의가 시작되기 40분 전에 강의를 했다. 뜻밖에도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다. 나는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썼는데 영어마저도 경상도식으로 하니 학생들은 그것이 우습기고 하고 한편으로 편안하게 들리기도 했던 모양이다. 학생들의 나이도 나와 같거나 나보다 한 살쯤 어렸는데 강사가 같은 또래라서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수업이라기보다는 학교 오락 시간이나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학생들이 잘 따라주자 나는 내친 김에 한 발 더 나갔다. 1978년 1월 28일 시행된 서울대 본고사가 있은 다음날, 학원에서 본고사 문제를 해설하기로 했다. 그때 내가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더라면 고2 겨울방학을 맞았을 터였다. 그 학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어 강사가 연세대 본고사 문제를 해설하고 있을 뿐 서울대 본고사 문제를 해설하는 강사는 없었다. 그러니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나는 우선 다른 학원에서 서울대 본고사 문제를 입수했다. 그리고 그것을 나름대로 연구해 매일 조금씩 칠판에 적어가며 해설 강의를 했다.
학생들이 좋아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학생들은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제 또래 조교라고 우습게보던 생각이 바뀌어 실력이 대단한 선생으로 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같은 일을 하는 조교들도 나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100명이 넘는 조교의 자부심과 긍지를 대변하는 우상이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도 채 다니지 못한 아이가 최고 인기 강사도 못 하는 강의에 도전하여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조교들은 대리만족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서울대 본고사 문제를 강의한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학원에 퍼졌다. 소문은 재앙을 불러왔다. 나는 섣부른 선생 연습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조그만 조교 녀석 하나가 몰래 강의를 한다는 소문이 학원측에 들어가자 그 반응은 즉각 돌아왔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학생과장과 마주쳤다. 학생과장은 큰소리로 ‘김정기!’ 하고 나를 불러 세우더니 평소 들고 다니던 몽둥이로 다짜고짜 후려치기 시작했다. 몽둥이가 내 엉덩이와 허벅지에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지독하게 매질을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나는 신음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도 흘리지 않고 태연하게 매를 맞았다. 이 오기는 학생과장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자존심을 다친 학생과장은 불 맞은 짐승처럼 자제력을 잃어버렸고 매질은 더욱 거세졌다.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 몽둥이쯤에 질 수는 없다.
배를 곯고 차가운 책상 위에서 웅크리고 자면서도 지켜온 내 자존심과 내 의지를 이렇게 허물어뜨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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