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벤을 향해 (9)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4-05 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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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변호사) 譯 첫사랑의 상대인 백작의 아들과 그 집을 찾아가 모친인 백작부인과 만난 것만으로 사랑을 포기한 것은, 연애는 결혼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윤리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녀가 사랑에 몸을 맡기는 타입의 정열적인 여성이었다면, 상대방 부모의 반대가 있어도 사랑은 더욱 불타 올랐을 것이다. 사랑은 장애가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깊어지고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데니스와의 사랑에 대해 “한 눈에 반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거기에는 아찔할 정도의 환희 속에 몸을 던지는,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여전히 추구하는 격렬함은 없었다. 불을 천천히 지펴가면서 일정한 틀에서 결코 나오려 하지 않는 고지식함이 있었다. 바로 그 때문에 데니스의 이혼 경력에 일체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1951년 가을의 총선거 직전에 두 사람은 약혼했다. 후보자의 불행이 선거에 플러스가 되고 경사가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양의 동서를 가리지 않는다. 선거 전에 약혼을 발표하는 것은 불리하다고 본 선거 참모들의 판단으로 발표는 선거 후에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약혼 뉴스가 선거구에 새나가 버리고 말았고 결국 그녀는 선거에 패배하고 말았다.

그 해 12월 두 사람은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마가렛은 보통 신부가 입는 흰 웨딩드레스가 아니라 푸른 드레스를 입었다. 사파이어 색의 벨벳으로 매우 품위있는 드레스였다.

남편이 재혼이기 때문에 흰 드레스를 포기한 대신에 마음먹고 화려한 의상을 입었던 것이다. 신랑 측에서는 어머니와 미혼인 여동생, 신부 측에서는 마가렛의 양친과 언니가 참석했다. 그러나 양가 모두 이 결혼에는 약간 걸리는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대처 가로서는 식품 잡화상의 딸은 신분이 너무 낮았으며, 엄격한 메서디스트인 알프렛 로버트에게는 데니스의 이혼 경력이 마음에 걸렸다.

결혼식을 끝낸 두 사람은 포르투갈, 스페인, 파리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이 허니문 동안에도 데니스는 업무를 보았다. 사랑의 종착역으로서의 결혼이라면 허니문은 모든 것을 잊고 사랑을 서로 확인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것이 영국의 전통이다. 가장 사적이어야 할 신혼여행에 신랑이 업무를 가지고 떠났다는 건 어찌된 영문일까? 데니스가 우연히 이 기회를 유럽 거래처와의 사업용으로 이용했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어떻든 극히 ‘비 영국적’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신부 마가렛이 굳이 권했을 것이다.

그녀 스스로 그 후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반면에 그녀 또한 남편의 일을 충분히 이해하였다. 그녀는 나중에 “취미는 정치”라 할 정도로 정치에 몰두하는데, 그녀에게는 정치는 비록 사적 생활을 희생하더라도 집착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적이어야 할 허니문에서 남편이 일하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보통의 영국인으로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녀로서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휴일이면 일이 마음에 걸려 견디기 어렵다”는 일본 비즈니스맨의 심정과 얼마나 닮은 것일까?

허니문에서 돌아온 후 두 사람은 데니스가 빌렸던 고급주택지 첼시의 플랫 스트리트에 있는 아파트 6층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전업주부로 들어 앉게 되었던 것인데, 평범한 주부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자질은 남아 돌아갔고 에너지는 넘쳐 흘렀기 때문이었다.

신혼 살림이 시작된 직후부터 마가렛은 법률 공부를 시작했다. 대처는 옥스퍼드 대학 입학 전에 과연 화학 전공이 진정 자신에게 맞는지 고민한 일이 있다. 그 때 아버지의 친구로 지방판사인 노먼 위닝과 상의하였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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