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은 신문의 평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칼럼을 읽는 독자가 다른 면 독자에 비해 수적으로는 적겠지만, 고급 지식인들은 칼럼의 수준을 놓고 그 신문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외부 필진을 보고 그 언론사와 지식인 사회의 연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면, 내부 언론인의 칼럼을 보고 그 신문사의 지적 풍토나 사회적 영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외부 필진은 대체로 일정 기간을 두고 교체할 수 있어 큰 어려움이 없겠지만, 장기간에 걸쳐 칼럼을 쓸 내부 인력을 키우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신문사에서는 일단 평기자들에게 가끔씩 ‘기자수첩’ 유의 글을 쓸 기회를 준다. 그 다음에 경륜을 쌓은 기자나 논설위원에게 정기적으로 글을 쓰게 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극소수만이 언론인 칼럼니스트로 성장한다.
언론인 칼럼니스트의 사회적 영향력은 어느 권력자 못지않다. 최석채 선우휘 천관우 송건호 박권상 김중배 김대중 등은 한 시대의 여론을 이끌거나 시대양심을 대변했다.
기라성 같은 언론인 칼럼니스트가 많지만 나는 중앙일보의 국제문제 대기자 김영희의 칼럼을 높이 산다. 내 평가의 기준은 단순하다. 사외의 지식인이 쓰는 칼럼에는 지식이 녹아 있어야 하고, 사내의 언론인이 쓰는 칼럼에는 정보가 들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식이 녹아 있는 지식인 칼럼이 흔치 않으려니와, 가치 있는 정보가 들어 있는 언론인 칼럼을 대하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데 김영희 대기자의 칼럼은 예외다.
국제문제 대기자인 김영희는 “국제문제는 한국과의 관련성(relevancy)을 중시하고, 한국문제는 국제적 문맥(international context)을 중시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게 그의 콘셉트(concept)다. 그러나 그의 글이 그 수준에 머문 것이라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그는 그 이상의 글을 쓴다. 그가 존경한다는 홍진기 사주가 즐겨 인용했다는,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는 칸트의 말을 차용하자면, 콘셉트 없는 정보가 맹목이라면 정보 없는 콘셉트는 공허하다. 그런데 대기자 김영희의 글은 콘셉트와 정보를 함께 품고 있다. 그래서 이른바 코드가 다른 사람에게도 그의 글은 유용성이 있다.
<플루타크 영웅전>에 나오는 말더듬이 웅변가 데모스테네스가 당대의 타고난 웅변가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등잔불 냄새가 나는 웅변을 했기 때문이다. 밤잠을 설쳐가며 준비하고 연습한 자는 재능만 믿는 자들을 마침내 꺾고 만다. 웅변가에게서 등잔불 냄새가 나야한다면 언론인한테서는 발 땀 냄새가 나야한다. 김영희의 칼럼에서 종종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좋다. 그의 칼럼은 대중적 정서에 편승하여 문재(文才)를 뻐기는 다른 칼럼과는 차별적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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