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에서 (7)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4-22 16: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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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변호사) 譯 지도자가 된 사람은 갑작스런 위기 시에도 결코 당황하거나 패닉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패닉에 빠져버리면 조직 그 자체가 깨져버린다. 사회의 지도자로 자라난 영국 신사들이 어릴 적부터 “Don’t panic”이라는 말을 계속 듣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처는 영국 숙녀라기보다 오히려 영국 여 신사라 부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녀는 어릴 적에 할머니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 우유를 쏟아 울어버렸을 때의 일이다. 꼼꼼하고 빈틈이 없어 지금까지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없었던 마가렛으로서는 쇼크였다. 그래서 무심코 울어버린 것인데, 할머니는 그런 그녀를 심하게 꾸짖었다. “Don’t panic.” 이것이야말로 할머니가 마가렛에게 계속 이야기해준 것이었다.

의원이 되고 나서 ‘영어변론연합’의 강사로 처음으로 미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남편 데니스와 비서 다이아나가 히스로 공항까지 전송하러 왔다. 공항의 제3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여권의 기한이 지난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몇 주일 전에 다이아나에게서 여권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괜찮다”고 대답했었다.

책임은 그녀에게 있었다. “난 참 멍청하단 말이야.” 한 마디 하고 그녀는 다이아나와 함께 택시로 여권 사무실로 향했다.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 다이아나는 그 침착함에 혀를 내둘렀다고 말했다.

대처는 화난 표정을 드러낸 적은 있었으나, 감정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눈물을 남에게 보인 적은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은 단 한번이었다. 아들 마크가 사하라 사막의 자동차 랠리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을 때이다. 그것이 아들을 지나치게 사랑한 어머니가 보인 유일한 패닉 상태였다. 하지만 그 단 한번의 예외를 제외하고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당황한 적은 없었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냉담하다는 인상을 준 것은 노골적인 감정 표현을 자제하였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그녀는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자질이 부족하다. 말을 거는 것만으로 훈훈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정치가도 있으나, 그녀에게는 그런 사람을 그렇게 느긋하게 만드는 분위기는 없다. 아마 필사적으로 사회의 계단을 기어 올라간 사람이 보여주는 접근하기 어려움일 것이다.

의원이 되고 1년 반 후 대처는 보수당 지부의 연설회에서 흥미 있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그 당시는 주목을 받지 않았으나, 나중에 대처가 수상으로서 영국을 이끌게 되고 나서의 철학이 나타나 있었다.

“지금까지 18개월 동안 의원으로 있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사항으로 우려해야 할 것은 정부가 지출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는가 라는 점입니다. 이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이 문제는 훨씬 더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몇 백, 몇 천의 숫자를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몇 만도 돼버리는 것입니다. 때로는 예산 방법을 바꿔야 하며, 국가는 회사가 주주에게 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의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 지출을 줄여 억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세금 수준은 좀처럼 내리기 힘든 것입니다.”

공공 지출을 늘림으로써 경기를 자극하여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케인즈 경제학에 대해, 정부는 금융의 큰 틀을 억제할 뿐이며, 경제는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에 맡겨야 한다는 통화주의(monetarism)는 70년대가 되어 그 세력을 얻게 되었으나 대처는 이미 이때부터 통화주의자였던 것이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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