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에서 (8)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4-23 16: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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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변호사) 譯 정부의 공공 지출 증대는 결국 경제를 정부에게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본래 자유롭게 독립하여 이루어져야 할 기업 활동이 정부에 의해 좌우된다면 기업의 활력은 잃게 된다.

대처는 그 위험성을 이때 이미 확실히 예견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혜안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젊어서 사회의 결함을 예리하게 간파하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본 19세기적인 자유주의를 신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아버지 알프렛이 몸으로 가르친 것이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우러러보며 자랐던 것이다.

대처는 계속 이야기했다.

“우리가 공격하려는 것은 주식 투기꾼입니다. 그들은 소득을 만들어내는 재산으로 주식을 가지는 게 아니라 거래로 만들어지는 이익을 위해 주식을 사고 파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주식 매매로 이익을 올리는 런던 시티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나타낸 것이었다. 보수당 의원이 그 지지 모체이기도 한 시티를 공격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대처는 그녀의 신조인 빅토리아 시대 중산계급의 이념인 ‘이마에 땀을 흘려 스스로를 이룰 것’을 여기서도 호소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대영제국이 세계에 으뜸가는 일등 국가에서 몰락해 가는 것은 국민이 스스로 돕는 자조의 정신가 근면의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일하는 게 아니라 주식이나 예금의 운용으로 부를 늘리고자 하는 시티화, 일본의 유행하는 단어로 말한다면 재테크화에 의해서라는 것을. ‘영국은 망하고 시티는 번영하는’ 사태를 대처는 우려하고 있었다. 영국 재생을 위해서는 시티적인 것을 불식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국의 시티화를 우려하고, 영국 국민에게 스스로 일할 것을 호소하여 공감을 얻은 것은 대처가 결코 시대를 앞질렀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가진 19세기적 자유주의가 시대의 흐름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시대를 간파하는 눈이 있었다기보다 시대가 그녀 쪽을 찾아와 준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녀는 운이 좋은 정치가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이 해 1961년 대처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써 토마스 모어 의원이 형사 사법 법안의 수정안으로 죄를 저지른 21세 이하의 젊은이에게 ‘태형’을 부과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 수정안에서는 법정이 17세까지의 법률 위반자에게 가느다란 채찍을, 18세부터 21세까지는 더 아픈 부들 가지로 만든 채찍을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여당 지도부는 이런 체벌에 반대였으므로 여당 의원에 의한 수정안 제출은 일종의 반란이라 할 수 있었다. 영국 의회에서는 당의 정책이라기보다 의원 개인의 생각이 짙게 들어있는 법안에 대해서는 당에서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투표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의원 개인의 양심과 관련된 문제는 개인의 판단으로 투표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수정안도 개인의 양심으로 판단되어야 하는 문제로 간주되어 당 지도부의 의지를 거슬러서까지 제출되었던 것이다.

대처는 이 수정안을 반대하여 “법률 위반자를 인도적으로 갱생시키겠다고 하면서, 형사재판이나 처벌의 목적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라고 연설했다. 변호사였던 그녀는 법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취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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