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경찰복을 벗은 뒤 퇴직금을 몽땅 털고 빚까지 내어 농장을 차렸을 때 내 어린 마음도 왠지 슬프기도 하고 새로운 기대로 차 있었다. 아버지를 비롯하여 우리 가족은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농장의 흙냄새를 나는 잊지 못한다. 남해 바다가 발아래 융단처럼 펼쳐진 언덕배기 위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남은 삶을 농장에 다 쏟아 넣었다.
그랬는데, 그 겨울 혹독한 한파 때문에 감귤은 달려보지도 못하고 나무가 몽땅 얼어 죽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것으로 아버지의 나머지 삶은 끝이었다. 그때부터 아버지에게는 자신의 인생이라곤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가족을 위해 지치도록 고난의 바다를 헤매야 했을 뿐이다.
그 이후 나는 꼭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열망을 내가 꼭 이루고 말겠다는 포부를 갖고 성공을 꿈꾸었다. 한창 성장기에 이런 슬픔과 고통을 당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가족의 불행을 바로잡겠다는 마음과, 아버지에게 시련을 안겨준 공직 사회의 부패구조를 척결하여야 한다는 의지였다. 왜 우리 사회는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부정한 집단에 의해 희생되는 모순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정직한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 사회적 정의가 살아있는 공동체, 최소한의 사회적 도덕이 남아있는 공동체의 실현이라는 작은 소망을 이루기 위한 삶의 고뇌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의 꿈을 두기 시작한 내 삶의 첫 출발이었다.
그 꿈은 어릴 적 고향에서 보았던 아버지의 부당한 패배와 힘없는 사람들의 좌절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토대를 갖추기 위한 정치의 길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정치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의지를 더욱 굳혔다. 그랬다. 앞으로 내가 정치의 길에 들어선다면 부당함에 대한 항거를 멈추지 않고, 진실로 사람을 아끼고 사람을 위하는 사랑의 정치를 펼쳐야겠다는 광범한 세계관을 키워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양심적이고 깨어있는 사회, 지성적이며 자존심 있고 개혁 지향적인 열정이 꿈틀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봉사와 희생을 소명으로 삼은 성실한 이 땅의 진정한 리더로서 새로운 발돋움을 준비했다. 21세기 한국적 상황에서 리더십은,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모순 구조들을 극복하여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사표가 되는 모범적인 인간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함을 깨닫고 그 길을 위한 준비를 해오고 있다.
조선 시대 청렴결백한 황희 정승은 원래 두문동 선비였지만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직접 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문동에 머무르지 않고 벼슬길로 나아갔다. 황희 정승이 가슴 속에 한결같이 간직한 것은 ‘백성을 위하는 마음’ 그것이었다.
이야기를 돌려보자. 덴마크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은 코펜하겐 의회 정문에 와서야 덴마크가 왜 좋은 나라가 되었는가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인다고 한다. 코펜하겐 의회 건물인 크리스챤보 성 정문에는 네 기둥이 서 있고 그 기둥 위에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것처럼 고민하는 인물들이 각각 다른 표정으로 집을 떠받치는 모양의 흉상 조형물이 있다.
그 흉상이 그토록 처절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덴마크 국민을 편안하게 섬길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렇다. 사람을 위하는 정치의 길이 바로 국가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길이란 것을 잊지 않는다면, 나 또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과 행동을 따르도록 만들어야 마땅하지 않겠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