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남북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오락가락 한다.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남북간의 갈등과 모순을 풀 수 있는 유일무이한 도구로 민족을 들먹인다. ‘우리 민족끼리’ 무슨 잡다한 설명이 필요하며, 이의가 있을 수 있느냐고 고자세로 나무란다. 그들의 행동과 언어는 ‘민족’에 기초한 것으로 지고지순하며 어느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고차원적인 행태여서 따져들기도 어렵다.
반면에 보수적인 인사들 역시 민족을 내세우는 데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는 산업화를 이룩한 개발독재정권의 공로를 인정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조국의 중흥을 이뤄내 자손만대에 전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들 양 진영은 같은 민족에, 같이 살아가고 있는 같은 국민이면서도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얘기를 종합하여 판단한다면 모두 우리 민족의 하나임을 확인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민족이 잘 살아야 한다는 한 가지 목적에 접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코 둘이 아니며 하나라는데 아무런 이의도 없으면서 어떤 문제에 봉착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대는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 좋지 않다. 그것은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은 6.25의 흔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민족끼리 싸워온 역사가 그 나라의 역사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근자에는 많이 줄어들었다. 지구상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나라가 한국과 중국뿐이라는 사실로서도 이는 명백하다. 한때 예멘이 나뉘었고 베트남이 분단되었지만 모두 합쳐졌다. 중국 역시 대륙은 통일되었지만 대만으로 옮긴 국민당 정부의 맥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끼리의 전쟁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반란군이 판치고 있는 나라가 많으며 이들의 다툼은 결국 그들이 그처럼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민족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민족의 이름으로 민족을 욕보이고 죽이는 실정이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종교적인 분파가 있으면 더욱 사태를 심각하게 한다.
이라크에서 수니파다, 시아파다 하면서 날이면 날마다 자살폭탄으로 상대를 죽이려고 덤비고 있는 꼴을 보노라면 참으로 가슴 아프다. 우리 민족도 냉전시대의 유물이긴 하지만 155마일 휴전선을 넘나들며 무장 간첩들이 발호했던 정경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겨냥하여 남침한 사건이나 강릉 잠수함 침투와 같은 해상루트를 이용한 무력행사는 우리 국민들 모두가 기억하는 일이다.
물론 실미도 사건이나 북파 공작원들의 시위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폭로된 북파무력 활동도 우리 역사의 뒤안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서로 치고 받으면서 살아온 우리 민족이지만 돌아서기만 하면 언제 그랬느냐 하는 듯이 서로 살갑게 만나고 다독거린다.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현장은 눈물 없이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비극의 한 토막을 그대로 연출해낸다.
이와 같은 기반을 밑에 깔고 우리 민족은 이제 평화통일의 숙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싸우고 다퉈왔지만 이념을 떠나서, 사상을 멀리하고 바라본다면 우리 민족처럼 하나 되기가 쉬운 민족도 별로 없다. 우리 민족은 이미 천년을 넘게 한 국가로 지탱해 왔다. 어느 민족보다도 다양하지 않은 구성원으로 버텨왔다. 이민족(異民族)이 섞일만한 빌미가 없었으며 설혹 있었다고 치더라도 극히 미미할 뿐이었다.
신라가 당과의 연합전선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린 후부터는 고려로 이어지는 단일민족국가였으며 대조영이 건국한 발해는 현재의 만주일대를 점령하여 한반도를 나누려는 전쟁은 빗겨갔기에 한민족은 세계에 유례가 드문 한 핏줄민족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세계화하지 않으면 설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우리는 3000억달러의 무역국이다. 거기에 걸맞게 한미 FTA도 타결했다. 수출 없이 국민소득을 올릴 수 없는 자원부족국가로서 일본과 중국에 한발 앞서가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과격하기만 했던 노동계도 숨을 죽이고, 전교조까지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닫혀있기만 했던 민족의 숨통을 활짝 열어 제치고 새로운 민족운동의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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