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에서 (10)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4-25 19: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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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변호사) 譯 ‘기회를 포착하는 점’에 이만큼 뛰어난 정치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신념의 정치가로서 하나의 일에 어디까지나 집착한다는 인상을 주는데, 스스로의 정치적 운명에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 한 대담하게 그 ‘기회’를 붙잡았다. 대처의 비범함의 하나는 그 기회가 진정한 기회인지 일시적인 기회에 불과한지를 순식간에 판단할 수 있었던 점이다. 그녀가 차관 직에 자신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이 포스트를 받는 것이 정치가로서의 장래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맥밀런 수상은 왜 의원이 되어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인을 차관으로 임명한 것일까? 그것은 영국 사회에 있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의원은 선거 전에 각 당 지부에 의해 능력이 시험되어야 비로소 입후보자가 된다. 의원이 되고 나서도 당선 횟수보다 그 능력으로 평가된다. 영국은 계급사회이면서 아래에서의 불만을 흡수하여 계급사회에 숨구멍을 뚫음으로써 계급사회의 온존을 도모해왔다. 그 수단이 된 것이 능력주의, 실력주의였다.

대처가 신인 의원이면서 차관직을 맡은 것은 정부 측에서 대처의 실력을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젊고 예쁘다는 것만으로는 정책적 수리적 사고가 필요한 연금국민보험성 정무차관직을 해 나갈 수 없다. 대처의 처녀 연설, 그 후 의회에서의 발언, 예산 문제에 대응하는 자세 등에서 ‘그녀는 할 수 있다’고 본 맥밀런 측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대처는 젊음이나 미모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력에 의해 자리를 얻은 것이다.

연금국민보험성은 그녀에게 정치적 훈련을 베푸는 장(場)임과 동시에 만족감도 주는 장이 되었다. 이 성(省)의 활동은 국가 재정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가 방침과 재정을 알기에는 다시 없는 기회가 되었다.

그녀는 여기서 하나의 중대한 발견을 했다. ‘관료들은 항상 장관이 받아들일 만한 충고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료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정책의 옳고 그름이나 국가의 장래가 아니라 자기들의 자리였다.

민간 회사에서도 인사에 관한 정보가 심하게 난무하는 회사일수록 관료사회에 가깝다. 관료라는 존재는 자리 유지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한다. 장관에 대한 충고가 장관이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되는 것은 관료들은 본능적으로 장관이 받아들일지 말지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장관의 ‘수용’을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대처는 금방 관료들의 체질을 간파했다. 그녀의 관료 불신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국가의 장래를 좌우하는 결정적 순간에는 관료만을 믿고 의지해서는 안된다---정치가로서의 이 판단을 수상이 되고 나서도 그대로 가졌다. 관료는 이용할지언정 전면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슴 속 깊이 새겨 넣었다. 수상이 되고 나서 관료가 올리는 의견보다 스스로의 신념과 직관 쪽을 중시한 것은 이때 생겨난 관료 불신에 뿌리박고 있다. 그녀가 ‘독재적’이라는 말을 들은 것도 관료를 불신한 것이 한 원인이기도 했다.

1962년 3월 연금 거치를 결정한 정부에 대해 노동당은 비난 결의를 상정하여 정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때 대처는 차관으로서 처음으로 정부 측의 답변에 나섰다. 영국의 정무차관은 한국에서처럼 맹장 같은 존재는 아니다. 의회에서 사무차관이나 국장 등의 관료가 답변에 나서는 경우는 없으므로, 장관이 결석인 경우에는 정무차관이 그 성을 맡아 야당의 공세를 받게 된다. 관료가 뒤에 따르는 게 아니므로 그 성의 모든 것에 정통해야 한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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