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전쟁, 협상 테이블 (2)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5-01 19: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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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중국북경대학 연구교수) 한불 정상회담에서 오간 대화록에서 미테랑 대통령은 고문서 교류 방식을 영구 임대라고 분명히 못 박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조건 없는 영구 임대 방식으로 도서들을 돌려받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미테랑은 우리나라에 올 때 이미 이런 원칙을 세우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빼앗긴 문화재를 130년 만에 되찾는다는 감격에 취해, 그것도 유럽 강국의 정상이 직접 들고 왔다는 데 취한 나머지 그 사실을 놓치고 만 것이다.

우리가 정말 소중한 문화재들을 돌려받고자 했다면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 반환이라는 카드를 내밀었을 때, 이것이 우리를 유리한 입장에 서게 하도록 고속철도 사업자 선정건과는 별도로 전문 협상 팀을 구성했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가 챙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고 가져올 수 있는 것은 확실히 가져왔어야 했다. 그랬다면 미테랑이 도서 반환이라는 카드를 제시했을 때, 프랑스라는 나라는 그 동안 자기네가 약탈해간 외국 문화재를 돌려줄 때 반드시 교환이라는 방식을 요구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을 것이다. 또 영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는 그리스 등에 조건 없이 문화재를 돌려준 선례가 있음을 알았을 것이며, 프랑스 역시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빼앗긴 문화재 가운데 모네의 작품 28점을 돌려받았고, 러시아로부터 고문서를 돌려받은 선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전 정보가 우리로 하여금 아주 유리하고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가 TGV를 사준 덕에 덤으로 받은 선물이라는 착각 속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프랑스에 질질 끌려 다니다가 결국 우리 문화재 맞교환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로 끝을 맺고 만 것이다.
이런 협상이 아닌 협상이 그 동안 어디 ‘외규장각 도서 반환’ 뿐이었겠는가. 한일어업 협정이나 대우자동차 매각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문 협상가들이 제대로 준비하고 임했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국가적 협상을 주도하고 전담할 인력이 전혀 없다. 고속전철 사업체를 선정할 일이 생기면 건설교통부 공무원들이, 어업 협정을 새로 체결해야 하면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이, 문화재 반환은 문화관광부나 정신문화연구원이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협상에 나선 각 부처 공무원들은 본 업무가 있기 때문에 협상을 준비할 여유도 없고, 더욱이 협상에 관한 훈련이나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적임자들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국제 사회는 영토 분쟁 등 눈에 드러나는 분쟁보다는 정보와 경제, 문화 분야의 분쟁이 급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협상이 관건이 된다. 국가 간의 이슈를 다루는 협상 테이블은 곧 국익을 건 새로운 전쟁터가 된다.
국제적인 시각에서 보면 협상에도 분명 승자와 패자가 있다. 일반인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어떻게 해야 협상 테이블에서 더 유리한 카드를 쥐고 실익을 챙길 수 있는가? 가장 시급한 것은 협상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이다. 현안이 생길 때마다 주먹구구식으로 달려 드는 게 아니라 유능한 전문 인력을 키워 장기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는 사회 전체적으로 협상 경험이 부족하다. 개인 혹은 민간이 협상 전문가를 육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나는 정부가 지원하는 국책 기관으로 ‘국제 협상 연구원’이 설립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협상 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를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으로 둘 것도 함께 제안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협상 사안은 그 사안과 관련 있는 특정 부처의 협조 아래 총체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 특별 기구에서 협상을 주도하면서 필요하면 재경부에도 도움을 청하고, 해양수산부나 문화부에도 협조를 구하면서 협상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사법시험 배출 인원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들을 흡수하여 협상 전문가를 키우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적인 역학 관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살아남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너무나 절실하다. 국가적 차원의 협상 전문가를 육성하는 일은 그러한 방안의 구체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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