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처의 결정은 예상 밖으로 심한 지진을 일으켰다. 교육계는 물론 매스컴도 일제히 대처를 비난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어린이의 건강을 희생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라는 것이었다. 매스컴과 의회로부터 대처는 다양한 닉네임을 선물 받았다. ‘밀크 스내처(우유 강탈자)’(스내처는 대처를 암시하고 있다) ‘대처 스내처’ ‘얼음 소녀’ ‘열린 냉장고’ ‘살로메’---온갖 비난하는 형용사를 그녀에게 퍼부었다.
대중 잡지 ‘더 선’은 대처를 ‘영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여자’라 썼다. 그녀가 회의장에 나타나서 답변대에 서면, 야당석에서 ‘기회를 잃은 장관’ ‘연지를 바른 스크루지 부인’(스크루지는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구두쇠) ‘반동적인 동굴의 여자’ ‘관념론적 엘리트주의자’ 등의 듣기 거북한 야유가 쏟아졌다. 대학 관계 예산에 대해서도 학생들로부터 온통 반발을 받았다. 그때까지 지방교육위원회에서 자동적으로 지불되던 대학학생연맹에 주던 자금을 대학 당국이 관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학의 자치조직인 학생연맹의 자금은 지금까지 연맹의 활동이나 학생의 복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자유독립운동이나 탄광 스트라이크 등에도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대처는 그런 자금 운용은 본래의 자금 취지에 반한다고 비판하고 있었다. 지방교육 당국에서 나온 자금은 당연히 납세자의 돈이다. 그 돈을 학생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 대처의 주장이다.
학생들의 반발은 예상 이상이었다. 대처가 가는 곳에는 끊임없이 학생들의 데모와 온갖 욕설이 따라다녔다. 런던의 사우스뱅크 기술공업학교에서 런치 모임과 강연 초대를 받았을 때는 태반의 학생들이 오르되브르가 나오기 전에 일어나서 홀에서 나가버렸다. 그래도 대처는 예정된 연설을 했으나 홀 바깥에서는 “대처 돌아가라” “대처를 미워하면 손뼉을 칩시다” 등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1971년 6월 리버풀 기술공업학교에서는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대처가 연단에 서자 앞 줄에 진을 친 학생들이 “학교 급식 우유는 어떻게 되었나?” “보수당은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들은 둘째와 셋째 손가락으로 V자 모양을 만들고 손등을 대처를 향해 올렸다 내렸다 했다. 승리의 V사인은 손바닥을 상대방에게 보이는데, 상대방을 비난 경멸할 때는 자신 쪽으로 향해 올렸다 내렸다 한다. 정상적인 어른들이 할 짓이 아니다. 어린이들이나 질이 낮은 패들이 하는 짓인데, 학생들은 굳이 대처를 도발하여 화를 내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 연설은 야유와 성난 고함소리로 거의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이야기했다. 종이 다트(던지는 화살)가 날아와서 그녀의 가슴에 맞았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연설이 끝나 사회자가 감사의 뜻을 표하도록 청중에게 호소했으나 연설회장의 누구 한 사람도 듣지 않았다. 야유와 욕설로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연설 후 보수당 지방의원의 집에서 부인과 쉬는 시간이 있었다. 그 날의 연설에 대해 질문을 받은 대처는 “시끄러운 집회였어요”라며 블라우스의 가슴 언저리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멍이 들어있었다. 부인이 쩔쩔 매며 “무언가 도와드릴 게 없나요?” 하고 묻자, 대처는 “아니, 별로 없어요. 오늘 오후에는 아직 약속이 둘 더 있어요. 아아 그래요, 맛있는 차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라고 대답했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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