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2007년 들어 북미 직접대화가 시작되고 그 결과 주고받기식 협상으로 2.13 합의가 도출됨으로써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되었고 6자회담의 진전과 북미관계의 개선은 곧바로 남북대화의 복원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2.13 합의 이후 무난하게 보이던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상호 선순환적 진행이 최근 들어 BDA 문제가 지연되면서 북핵상황의 불안정성 증대와 함께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북미 협상이 진행되고 6자회담이 진전되는 국면에서야 그에 맞춰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것을 탓하거나 시비 걸지 못하지만 최근 상황처럼 BDA 문제로 2.13 합의가 삐걱거리게 되면 북핵상황보다 앞서가는 남북관계를 비판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다.
2.13 합의에 따른 북한의 약속 이행이 한 달 이상 미뤄지면서 북핵문제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데 반해 남북관계는 지난 20차 장관급회담의 합의에 따라 예정대로 쌀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경추위 개최 및 철도 시험운행, 경공업 원자재 제공 등이 논의되고 진행되고 있는 바, 보는 이에 따라서는 2.13 합의 속도와 남북관계 속도가 차이가 있다고 여겨질 것이다.
북미 대결이 극단화되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도저히 남북관계는 지속하기 힘든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핵상황과 연계된, 6자회담과 연계된 남북관계의 구조적 제약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반도 정세의 특징상 남북관계는 그 자체로 독자적 유용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관계의 유지와 발전은 북미관계 악화를 막아내는 안전판이면서 동시에 향후 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발전을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의 성격을 갖고 있다.
즉 핵문제가 악화되거나 북미관계가 대결로 치달을 경우 오히려 남북관계의 유지와 발전은 북미대결로 인한 한반도 긴장고조와 위기증대를 막아내는 안전장치의 역할을 한다.
남북관계는 북핵문제의 진전과 북미관계의 전개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연동될 수밖에 없다. 지난 시기 남북관계의 독자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북미 대결이 심화되었을 때 남북관계마저 중단되거나 경색되었던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때문에 우리가 남북관계의 고유성과 독자영역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북핵문제나 북미관계를 전혀 도외시한 채 진행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북핵문제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위기를 완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나아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해 북핵 교착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는 북핵상황이 악화되는 경우에도 남북관계는 유지발전되어야 함을 지적하고자 할 뿐이다.
2.13 이후 지금과 같은 국면은 북핵문제가 과거보다 우호적인 환경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BDA 문제의 지연으로 우여곡절을 겪고는 있지만 2.13 합의 자체가 결렬되거나 파탄난 것은 아니고 특히 북한과 미국 어느 쪽도 2.13 합의를 깨고 과거의 대결 상태로 환원하자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큰 틀에서는 여전히 지금의 국면이 대화가 진행되고 합의가 실천되는 긍정적 상황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따라서 BDA 문제로 삐걱거리는 것을 이유로 예정된 남북관계 일정을 늦추거나 합의 사항 이행을 조절하자는 것은 사실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상호 연관성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본 것이다. 6자회담이 정체될 때 남북관계도 악영향을 받는 부정적 연관관계뿐 아니라 역으로 남북관계가 진전됨으로써 6자회담이나 북미관계에 우호적 환경이 마련되는 긍정적 연관관계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이를 전제한다면 지금 시기 2.13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고 일시 정체되고 있는 BDA 문제 역시 결국은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오히려 남북관계는 예정대로 혹은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진전과정을 보이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북미 대결을 완충시켜내고 북핵상황의 악화를 방지해내며 가능하다면 남북관계를 통한 대북 설득 및 압박으로 북한의 유연한 태도를 이끌어냄으로써 지금의 상황을 호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2.13 합의의 원만한 이행을 독려하고 북미간 유의미한 접점 마련을 위해서라도 남북관계가 진전되어 한국이 북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6자회담보다 반발 뒤선 남북관계가 아니라 6자회담보다 반발 앞선 적극적 남북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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