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은 6월혁명이다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5-15 19: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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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보(언론인) {ILINK:1} 온 국민이 참여하여 전두환 군사정권을 무너뜨렸던 저 87년 6월항쟁이 올해로서 스무 돌을 맞는다.

우리 정치권은 그동안 6월항쟁사 존재 자체를 무시하거나, 별반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치부해 왔다. 스무 돌을 맞아 이제 겨우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으나 6월항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는 여전히 인색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6월항쟁처럼 민중 전체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시대는 흔치 않다.

19세기 말의 동학농민혁명이 그러했다고나 할까?

더구나 민중의 요구가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진 역사는 삼국시대 이래 유일무이하다고 할 것이다. 그것도 국민들이 거의 피를 흘리지 않고서 말이다.

옥의 티라면 6월항쟁 직후인 87년 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80년 군사쿠데타의 주역 중의 한 명이던 노태우씨를 직선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87년 당시 민중들의 공통적 요구의 핵심은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대통령 직선제였고, 이 대통령 직선제는 흔들림 없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노태우씨의 일시적 등장은 군사독재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 체제가 바뀌어가는 과정상의 에피소드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인색한 평가, 다시 해야 할 세 가지 이유

필자가 6월항쟁을 6월혁명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다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6월항쟁은 온 국민이 총단결하여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을 뿐 아니라 한국사에서 최초로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한국민은 1960년 4월혁명을 통해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크게 진전시킨 바 있다. 그러나 4월혁명은 그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를 맞아 좌절함으로써 백낙청교수의 주장대로 미완의 혁명으로 남아 있었다.

둘째, 87년 당시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실천적 용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당시 전두환 정권은 친위쿠데타같은 온갖 반격을 획책했으나 끝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어떤 세력도 힘으로 한국사회를 전복시키려는 망상은 하지 못하고 있다.
87년 6월항쟁의 대미를 장식했던 6.26 시위에는 경찰 추산으로도 전국적으로 400만명이 참가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온 국민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인 시위에서 폭력과 유혈참사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셋째, 6월항쟁 이후 2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정권도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 어떤 정치세력도 선거결과에 깨끗이 승복해 왔다.
앞으로도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거나, 집권 프리미엄을 권력연장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어떤 정치세력이 나타난다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므로 6월항쟁의 정신은 우리 국민들과 함께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의 역사정신 속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세계사에 견주어 우리가 우리 민족을 너무 낮춘다는 점이다. 이것은 겸손과는 다르다.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라고 일컫는 영국이 자랑하는 3대혁명,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 1645년의 청교도 혁명, 1689년의 명예혁명을 살펴보더라도 단 한 번의 혁명적 사건만으로 민주주의가 완결되는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한국적 시각에서 본다면 마그나 카르타나 명예혁명을 혁명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자랑스럽게 혁명이라고 부른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만 해도 향후 80년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1870년대에 가서야 공화정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1804~1814년간의 나폴레옹 왕정, 루이18세의 왕정(1814~1824), 샤를10세 왕정(1824~1830), 루이 필립 왕정(1830~1848),루이 보나팔트 공화정(1848~1852), 루이 보나팔트 왕정(1852~1870), 빠리 꼬뮨(1871), 제3공화정(1871년 이후)이 프랑스대혁명 이후 80년간의 프랑스 정치사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6월항쟁을 6월혁명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치에 닿지 않는 점이 있겠는가?
그러나 항쟁이냐? 혁명이냐? 하는 명칭보다는 우리가 바로 오늘 우리의 역사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87년 6월항쟁이 되었든, 87년 6월혁명이 되었든, 우리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싹을 더욱 가꾸고 풍성하게 해야 할 사람들은 20년 전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혁명사에서도 깨달을 수 있듯이, 멈춰서 있는 것은 역사를 후퇴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87년 항쟁을 혁명으로 여길 만큼 자랑스러워한다.
가만히 앉아서 그 덕을 보려고만 할 게 아니라, 앞으로 6월항쟁의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우리 다 함께 찾아봐야죠!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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