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는 염라대왕만이 가지고 있다고 하던가. 그러나 우리 정치판에서는 살생부가 일상으로 떠돌아다니고 특히 군부독재시대에는 살생부에 이름이 올랐다 하는 소문만 들어도 덜덜 떨었네. 곳곳에 거미줄처럼 처져 있는 정보기관 안테나에 걸리면 살생부에 이름이 오르지. 그리고 정치판에서 죽어 줘야 하는 것이네.
살기 위해서는 살생부에 이름이 오르지 말아야 하고 그러자니 권력자에게 온 갓 아부아첨을 하면서 간도 쓸개도 다 빼 줄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그 시대의 정치인들은 모두가 불구였네. 간도 쓸개도 없는 인간이 어떻게 온전한 인간이겠는가.
박 군.
요즘 같은 대명천지에 살생부가 돌아다니네. 누구 이름이 올라있고 누구는 빠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참으로 기가 막히겠지.
“네가 뭔데 남의 이름을 살생부에 올려놓고 죽였다 살렸다 하느냐.”
당연히 이런 항의가 나올 법 한데 생각보다 조용한 것을 보면 말 같지 않은 말을 탓하면 똑같은 인간이 될 것 같아서 그런가. 혹은 말한 사람만 선전해 주는 꼴이 되서 그런지도 모르겠군.
그럼 모든 사람한테 궁금한 살생부에 이름이 오른 인물들은 누구냐. 오늘의 한명회가 손에 들고 있는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누구냐.
이름을 밝히면 명예훼손이라고 항의를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왜냐면 오늘의 살생부는 목숨이 사라지는 살생부가 아니고 정치적 생명을 끊어 놓겠다는 엄포용 살생부인데 솔직히 말을 한 사람이 그만한 힘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분수를 모른다는 평가니 그냥 웃어넘길 수 있을 것이네.
대충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한명숙 등인데 이제 유시민이 당으로 복귀한다니 한 명이 더 늘었겠군. 그럼 왜 이들이 살생부에 올랐느냐. 바로 이들은 열린 우리당의 의장을 했고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거나 장관을 지낸 사람이네.
이쯤 되면 대충 짐작이 되겠지. 짐작한대로 요새 통합이 유행처럼 떠도는데 민주당의 주가가 올라가서 말발이 선다는군.
이때 바로 살생부가 등장하네. 민주당 대표가 된 박상천이 왈, 열린우리당의 이런 저런 인물은 제외되어야 한다고 한 것이네.
언론은 박상천이 반대하는 사람들은 통합에서 빠지게 되고 그게 바로 정치적인 사망이 되며 그래서 살생부라고 한 것이네.
박 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짐작이 가지 않나. 박상천은 자존심이 대단하고 엘리트 의식으로 꽉 차있고 고집도 못 말리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더군. 맺고 끊는 것이 칼 같은 사람이라고 하네.
거기에다 고시합격하고 검사 지내고 장관 지내고 이제 당 대표까지 하고 있으니 어디다 내놔도 당당한 인생이네. 이런 당당한 인생이 살생부 논쟁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을 받고 있으니 속이 참 많이 상할 것 같군.
박상천이 공격을 받자 민주당 대변인 유종필이 한마디했는데 열린우리당 전략회의에서 박상천을 집중공격하기로 내부전략이 결정됐다고 했네.
유종필은 잘 알고 있네.
노무현과 함께 잠시지만 정치를 함께 한 유종필은 노무현이 많은 생각을 한 후에 말을 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네. 대변인이라고 아무렇게나 말 하면 안 되지.
옛날 자네도 유종필이와 일을 함께 한 적이 있었지. 경선시절 자네가 유종필을 칭찬하면서 참모로서 훌륭한 자질을 갖춘 인물이라고 했네.
박상천인 역시 기개가 대단한 인물이어서 살생부를 비롯한 통합의 걸림돌이라는 비판에 대해서 “눈 하나 꿈쩍하지 않겠다”고 하더군.
한나라당의 집권이 역사의 후퇴라는 것을 박상천이 왜 모르겠나. 그런데도 대통합에 걸림돌이라는 비판을 겁내지 않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아니네.
살생부는 힘 있는 자가 마음에 안 드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만드는 부당한 명부겠지. 그렇다면 지금 떠돌고 있다는 살생부를 만들고 집행하려는 사람은 과연 정당한가.
그는 누구이기에 누군 죽이고 누군 살리고 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수십억 인구는 저마다 다른 인격체네. 신의 오묘한 섭리로 창조된 인간은 평등하네.
정치인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국민뿐이라고 믿네. 국민만이 살생부를 가질 권리가 있네.
만약에 통합을 방해함으로서 역사를 후퇴시키고 대의와 순리를 거역하는 세력에게 승리를 안겨 준다면 그 정치인은 국민이 기록하는 역사의 살생부에 반드시 이름이 오를 것이라고 확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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