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로의 길 (11)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5-28 20: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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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변호사) 譯 히스 진영이 혼란했던 것은 대처의 경쟁 후보를 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전 북 아일랜드 장관으로 보수당 위원장인 윌리엄 화이트로, 히스의 개인적 조수로 일한 적이 있는 짐 프라이어, 하원 원내총무 존 페이튼, 거기에 히스 진영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으나 전 물가장관인 제프리 하우가 입후보했다. 히스 진영은 결국 후보자를 통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직후부터 대처가 그저 신념만 내세우는 정치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투표가 1주일 후인 2월 11일로 설정되자, 각 진영 모두 맹렬한 득표 공작에 들어갔다. 대처도 가능한 한 많은 의원과 점심, 저녁 식사를 같이 하도록 노력했다.

어떤 젊은 의원은 “이렇게 몇 번이나 저녁 식사에 초대 받은 적은 없었다. 당수 선거가 내내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될 정도다”라고 술회했다.

이런 석상에서 대처는 투표 부탁을 하는 것보다 당수인 척하여 영국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이스트본에서의 ‘젊은 보수당원’ 대회에서는 대립 후보인 화이트로가 지방분권 문제를 길게 이야기하여 청중을 지루하게 만든 데 비해, 대처는 보수당의 미래, 바람직한 모습 등을 설파하여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다.

의회에서는 연일 밤 예산 심의가 실시되고 있었으나, 대처는 보수당의 대표적 논객으로 윌슨 내각의 예산 안 공격에 나섰다. 심의는 종종 한밤중인 12시를 넘겼으나, 대처는 조금도 피곤해하지 않고 “여자인 주제에”라는 남성 의원의 시기(猜忌)를 날려버리는 강력함을 보여주었다.

당수 선출 선거운동이 최종 단계에 접어든 주말, BBC 텔레비전은 후보자 전원을 스튜디오에 불러 각 후보의 포부를 생중계로 방송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처는 민방의 ‘독립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그녀의 반생과 포부를 이야기했다. 많은 보수당 의원은 ‘현재의 인물’ 대처를 알려고 독립 텔레비전에 채널을 맞춰 결국 BBC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다. 대처는 이상이나 신념을 내세워 돌진할 뿐만 아니라, 작전이나 전술을 세워 그에 따라 스스로를 꾸며내는 연기---정치성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제2회 투표도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정오에 시작하여 오후 3시 반에 끝나고 오후 4시에 발표되었는데 결과는 지난번과 달랐다.

대처 146표, 화이트로 79표, 하우 19표, 프라이어 19, 페이튼 11표

대처가 이긴 것이다. 여기서 역사가 만들어졌다. 식품 잡화상의 딸이 스스로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보수당 당수의 자리를 손에 넣은 것이다. 첫 번째 투표이래 노력하여 냉정함을 가장했던 대처도 아닌 게 아니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즉각 남편 데니스에게 전화를 했으나, 남편은 이미 그 뉴스를 알고 있어 그녀의 흥분을 받아들일 여유가 있었다.

앞으로 보수당 당수로서 권력 기반을 굳혀가야 하는 대처로서는 당내를 단결시키는 것이 제일이었다. 후년의 강경함, 자신감은 아직 감춰져 있다. 상황에 따라 알아서 대처하는 현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 당수 탄생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여성이 얼마나 할 수 있을까?”라는 분위기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떤 노동당원은 ‘노동당으로서 최고의 뉴스’라고 말했다. 여성 당수를 추대한 보수당이 선거에 이길 리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 판단이 잘못이었다는 것은 그 4년 후 또다시 4년 후 그리고 그 다음다음의 4년 후에 증명되었다.

그러나 노동당 속에도 혜안의 인사는 있었다. ‘그녀는 가장 우수한 남자’라고 갈파한 자가 있었던 것이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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