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기서 살피고 넘어가야 한다. 북베트남의 그런 행동은 무엇을 증거하는가? 북 베트남인들은 닉슨 행정부가 전쟁을 조만간 끝내야 한다는 강한 부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들이 파리 평화 협상을 지연시키면 시킬수록 미국이 협상 자리에서 더욱 큰 양보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닉슨은 1972년에 대통령 선거에 재 출마해야 했다. 국민들은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미국은 그만큼 다급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다급해지면 다급해 질수록 협상을 이끄는 쪽은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다. 또한 여유에서 비롯되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다급한 쪽은 어떡하든 빨리 협상을 끝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북베트남은 매우 느긋했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북베트남은 평화협상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종결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시간의 주도력을 갖고 있기에 가능 한 것이었다. 북베트남은 필요한 모든 시간을 끌기로 결정했다. 바로 북 베트남에서는 협상의 가장 큰 비밀 중의 하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시간적 여유가 큰 쪽이 항상 원하는 바를 더 많이 얻게 되는 것은 북베트남의 예로 인해 확실하게 인증된 사실이다.
북베트남은 이 협상에서 명백한 승자로 부상하기 위해서 시간이라는 요소를 유리하게 활용했던 것이다.
평화 협상의 시작부터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의 대통령이 권력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미국은 한결같이 이에 동의하기를 거부했다. 미국은 모두 북베트남의 군인들이 평화의 조건으로 남베트남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닉슨은 1972년 선거 운동 전까지 전쟁을 종식시키지 않을 경우 선거에서 지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미국은 북 베트남의 요구대로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았던 이 두 요구를 들어주고야 말았다. 미국이 남베트남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침입해서 점령했고, 공산정권의 통치 아래 두었다.
그렇지만 북 베트남이 큰 댓가를 치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3년반동안 진행된 평화 협상 기간 동안 미국은 계속해서 북베트남을 폭격했다. 예컨대 이른바 크리스마스 폭격이 있었던 12일 동안 미국은 35000톤의 폭탄을 투하했는데, 북베트남의 전력시설의 80%와, 석유보유고의 25%가 파괴되었다.
이 엄청난 손실에 비추어볼 때 북베트남이 협상에서 이기고자 하는 의지를 접고 미국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것에 동의하는 것이 쉬웠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 베트남은 집요했고, 미국이 느끼는 시간상의 압박감이 크리라는 것을 제대로 파악했기 때문에 협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례가 협상가에게 주는 교훈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오랫동안 충분히 기다릴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기다림의 댓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침착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을 경우 협상에서 이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협상의 최대 승자는 흔히 시간이 많은 쪽인 것이다.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결정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요구되는 시간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되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나서 시간과 힘을 쏟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달리 말하면 목표를 협상에서 얻어내기 위해 그 만큼의 시간을 쓰는 것이 값어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오직 본인만이 이 문제에 답할 수 있다. 이 책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질문을 할 때 현실적이고 논리적이 되어 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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