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닝 가 10번지를 목표로 (11)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6-13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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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변호사) 譯 젊었을 때 그녀의 머리카락은 붉은 색이었다. 결혼 후에는 그것을 은색으로 바꿨다. 그리고 의원이 되고 나서는 갈색으로 염색했다. 그녀는 여자답게 보이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유세 중의 일이다. 측근에게서 연설할 때 너무 처음 대하듯 하므로 좀더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이야기하는 편이 친근감을 준다고 충고를 받은 대처는 그 충고대로 연설을 했다.

다음날 스코틀랜드의 신문은 “그녀의 목소리는 허스키하고 섹시하다”고 썼다. 대처는 이 신문을 읽지 않았으나, ‘당내자 고용장관’ 프라이어가 읽고 걱정이 되어 대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청이 상한 게 아닌가 싶었지요.” 나중에 대처는 이 이야기를 “제 평생 이런 심한 모욕은 없었어요”하고 웃으면서 측근에게 털어놓았다. 섹시하다는 얘기에 아주 싫지는 않았던 것이다.

야당 당수로서 대처의 최대 목표는 말할 나위도 없이 윌슨 노동당 정권의 경제정책을 공격하여 의회를 해산시키는 것이었다.

당수가 되고 1년 후인 1976년 3월, 윌슨 내각은 공공지출백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여기에 노동자 좌파 그룹이 반란을 일으켜 백서의 승인을 의회가 거부하는 소동으로 발전했다. 노동당 내의 내부 대립이 노골적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대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각 불신임 안의 제출을 결정하고 즉시 보좌진에게 의회의 과거 예를 조사하게 했다. 당내 분열로 사임에 이른 예를 찾아내어 불신임 안 제출 연설에 사용하려는 것이다.

보좌진들은 역사가들을 찾아 물어보아 몇 가지 예를 모아왔다. 1905년의 밸푸어(Balfour) 내각, 1923년의 볼드윈(Baldwin) 내각, 1940년의 체임벌린 내각이 당 또는 국론의 분열로 사임했다. 어느 것이나 이번과 같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대처는 이들 역사를 인용하여 윌슨을 공격하기로 했다.

영국 정치가에게 역사는 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영국 국민 사이에는 현대는 역사의 산물이어서, 역사를 더듬으면 우리와 같은 행동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정치가들도 스스로의 행동을 역사 속에서 생각하고자 하며,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의회 연설에서 역사의 예가 몇 번이나 인용되는 것은 역사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임과 동시에, 역사는 배워야 할 현명한 선례로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정치가에게 무기이기도 한 것이다. 대처는 윌슨 내각을 사임으로 몰아세우는데 이 역사에서의 인용 예를 무기로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보수당의 신중 파는 노동당의 분열은 일시적인 것으로 보아 불신임 안 상정은 시기 상조라 주장했다. 불신임 안이라는 것은 결정적 순간에 제출해야 하는 것으로, 경솔하게 전가의 보도를 뽑는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처는 “저는 몇 번이라도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그게 열릴 때까지 몇 번이라도 두드리겠습니다.” 라고 공언하며 그림자 내각의 각의에서 불신임 안을 제출할 결심을 확고하게 보였다. 이 각의에서 부 당수 화이트로는 대처에게 상대방 측의 당내 분열을 너무 추궁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충고했다.

“당신이 수상이 되었을 때 당신이 같은 입장에 설지도 모릅니다” 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대처는 결연히 이렇게 거리낌 없이 말했다. “저 자신이 같은 입장에 서면 사임할 뿐입니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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