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 간의 이 같은 무역적자를 빗대서 소위 ‘가마우지 경제’라는 용어가 등장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고착화 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이다.
‘가마우지 경제’란 말은 일본의 경제평론가 고무로 나오키(小室直樹)가 1988년에 쓴 <한국의 붕괴>라는 책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는 우리의 취약한 기술 때문에 재주는 한국이 넘고 돈은 일본이 가져간다는 우리 경제의 허상을 가마우지에 빗댔다.
가마우지는 중국 계림성 일대에서 어부의 손에 이끌려 물고기를 잡는 새이지만 잡은 물고기를 자신이 먹지 못하고 주인에게 바치는 길들여진 낚시 도구로 더 잘 알려진 새이다. 계림성에는 가마우지 낚시법으로 물고기를 잡는 기술이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습관이다.
중국인들은 원래 야생인 가마우지의 알을 인공으로 부화시켜 집에서 낚시용으로 기른다. 알은 보통 3~5주가 되면 부화하는데 세상에 나온 가마우지는 태어나면서부터 조그만 물고기를 먹이로 주어서 집에서 기르기 때문에 주인을 따라다닐 정도로 순치돼 있다. 야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달아나지도 않고 주인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가마우지가 성장하면 먹이를 잡아도 삼키지 못하도록 목에다 줄을 묶어서 물속에 집어넣는다. 물론 고기를 잡지만 주인이 옭아맨 줄 때문에 삼키지 못하고 주인에게 물고기를 고스란히 빼앗기고 만다. 다만, 나중에 그에게는 약간의 물고기가 식사로 배당될 뿐이다.
이처럼 가마우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한국경제가 미국과 일본의 가마우지‘라는 달갑지 않은 고무로 나오키(小室直樹)의 한국 경제의 진단이 현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목줄이 묶인 양쯔강의 가마우지 같다.
목줄(부품산업)이 묶여 생선(완제품)을 삼켜도 곧바로 주인(일본)에게 바치는 구조다.”
그가 한국경제의 허실을 꼬집은 지 10년이 지난 1999년, 이번에는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라는 사람이 “부품산업이 일천한 한국 산업은 재생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 중국 무역수지 흑자는 230억 달러였다. 반면 대 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253억 달러였다. 중국에서 번 돈을 고스란히 일본에 갖다주고도 모자라 20억 달러를 더 보태서 내주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6년 동안 우리나라의 대 일본 무역적자 누적액은 1039억 달러인데, 이 가운데 기술력 부족으로 부품을 사들여온 무역적자가 794억 달러였다. 결국, 무역적자의 2/3는 기술, 부품산업이었던 것이다.
지금과 같은 무역수지 흐름을 보면 부품과 소재 산업은 일본에 의존한 지가 20년이 되었지만 변한 게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미국에서 번 돈이 일본으로 흘러갔던 이전에 비해서 지금은 중국에서 번 돈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흘러가는 경로 상의 차이뿐이다.
오늘날에 이르러서 가마우지 경제체질은 더욱 견고해지는 것 같다. 수출이 반도체 등 몇 가지 주력품목에 편중되다 보니 기술수입과 부품산업 수입도 더 늘어나고 있다.
재주만 부리고 돈은 벌지 못하는 이 악순환은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물론 우리의 원천기술, 핵심기술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웠다면 20년이 지나도록 가련한 가마우지 신세는 면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탈출구는 있을 것이다.
필자는 기업들이 조급성을 버리고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된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기술을 개발하는데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 기술은 도입하고 물건부터 팔아먹는 것이 최고라는 기업들의 사고부터 바꿔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쓰는 휴대폰 기술은 미국의 퀄컴사로부터 들여온다.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퀄컴에 지급한 로열티는 총 2조5815억 원이 된다. 인기를 끌고 있는 카메라폰의 이미지센서는 일본과 미국에서 수입한다. 디지털 카메라의 이미지센서, DVD의 핵심 부품인 광 픽업도 모두 일본에서 수입한다. 액정표시장치(LCD)와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역시 일본에서 수입한다. 원천기술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산업기술은 선진국이 이미 개발한 제품을 들여와 값싸게 생산하는 공정기술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다. 기술은 사고 제품만 붕어빵을 찍어내듯 하니 IT 수출이 늘수록 기술적자도 늘어나는 것이다. 한국은 재주만 부리고 일본과 미국은 돈을 챙겨가는 기술종속을 극복하는 길, 그것은 결국 기업의 장기적인 기술투자와 대학의 인재육성에 달려 있다고 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365일 내내 물고기를 잡아 주인에게 고스란히 바치고 나서도 그저 몇 마리의 물고기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가마우지의 비극이 지속돼서야 극일(克日)이 되겠는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