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북핵위기론에 익숙하고 대북 강경론을 일관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지금 북핵문제는 일정한 우여곡절과 기복을 겪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위기가 심화되기보다는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잊혀져 가고 죽은 줄만 알았던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실질적 실천조치로서 2.13 합의가 도출됨으로써 북핵문제는 어렵사리 평화적 해결의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에 순탄하게 진행되던 2.13 프로세스는 BDA라는 암초에 걸려 두 달 이상 지연되고 말았다.
그러나 예상 밖의 진통을 겪으면서 결국은 BDA 문제가 해결되었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2.13 프로세스는 더욱 질긴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북한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과 고생을 마다한 미국의 모습은 북핵문제 해결에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의지와 적극성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결국 미국은 갖가지 애를 쓰다가 중앙은행 간 거래라는 특이한 방식을 통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이번 BDA 해결 과정에서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였고 이는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목표를 위해 미국이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적극적 의지를 갖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 못지않게 북한도 이번 BDA 해결 과정에서 상당한 유연성을 보였다. 북한은 단순히 BDA에 동결된 자금을 되찾는 게 아니라 국제 금융체제에 정상적으로 복귀하는 것이 주된 관심이었다. 올해 초 북미 베를린 회담에서 김계관 부상이 힐 차관보에게 BDA 문제 해결을 약속받으면서 제3은행 경유 이체방식을 관철시킨 것은 바로 국제금융시장으로의 정상 복귀를 위한 것이었다.
미국이 BDA 동결자금 해제를 공식발표한 이후에도 북한이 지속적으로 정상입금을 확인한 연후에야 2.13 이행에 나서겠다고 고집한 것 역시 국제 금융시장에서 북한자금의 정상 거래가 가능한지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술적 어려움으로 북한자금의 입금이 완료되지 못하는 과정에서도 북한은 과거와 달리 참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종합하건대 두 달 가까이 지속된 이번의 BDA 사태는 오히려 2.13 합의의 무력함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2.13 합의를 지켜내려는 미국의 강력한 적극적 노력과 이에 화답한 북한의 유연함을 역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일부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BDA 사태는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서로를 배워가고 익숙해져가는 의미 있는 ‘학습 과정’이 되었고 2.13 합의 실천에 대한 북미 양자의 강력한 의지를 서로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BDA 이후 평양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은 2.13 프로세스는 물론이고 2.13 이후의 문제 즉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등에 대해 ‘포괄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평양회담에 대해 북한과 미국 모두 포괄적 논의였음을 인정한 것도 바로 이를 반영한다.
북미 간 활발한 양자협상이 진행되고 여기에서 포괄적인 의제가 논의되는 것은 결국 형식과 내용 양 측면에서 북핵문제 해결의 핵심 당사자들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가 된다.
남북관계 역시 2.13 프로세스의 진전을 뒷받침하고 북핵문제 해결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어렵게 BDA를 해결해 냄으로써 2.13 프로세스의 끈질긴 힘을 확인시켜주고 북미 양자협상의 힘이 지속됨으로써 당사자들의 적극적 노력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지금, 이제 2.13 합의는 우려하거나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잘 실천될 수 있도록 기대와 희망 속에 더욱 격려하고 지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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