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불평등과 빈곤문제가 심각해 사회정책 필요성이 큰데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들 중 국민소득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매우 낮은 나라다. 이런 특징은 미국이 인종문제와 빈곤문제가 중첩된 나라란 점과 관련이 있다.
즉 미국의 잔여적·선별적 사회정책은 백인 중산층의 정치적 이해와 완전히 분리된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유럽처럼 복지동맹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조세부담률이 아주 낮은데도 조세저항이 거센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미국은 복지국가의 기본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는 연대(solidarity)의식이 사회 전반에 일반화·보편화되기 어려운 나라다.
토크빌(A. Tocqueville)이 말했듯이 미국 민주주의는 기회 균등(물론 백인 남성에 국한된 것이었지만)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 미국 역사에서 평등이란 기회 균등을 의미한다. 미국은 복지를 확대하기 보다는 교육 투자를 증가시켜 기회의 균등을 강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개인주의의 나라다.
미국은 국민소득 대비 기부금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 주로 교회 헌금과 대학 기부금이 다른 나라들보다 매우 많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유, 기회균등, 능력주의(meritocracy), 개인주의, 프로테스탄트 도덕주의와 국가 개입을 혐오하는 자유주의 사상과 정서가 지배하는 나라다. 미국은 다민족 문화와 다원주의 사회면서도 핵심적인 정치경제 문제에서는 자유주의 이념 국가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자유무역의 개방경제여서 대외의존도가 높을 거라고 알고 있지만, 미국은 무역의존도가 낮고 내수 비중이 매우 큰 나라다. 2004년 미국의 GDP 대비 대외의존도는 12.7%로 OECD 평균 43.9%, 유럽연합 평균 48.5%, 한국 41.9%보다 훨씬 작다.
미국처럼 여러 산업들이 분산되어 있는 내수 위주의 대규모 경제에서는 외생적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대규모 내수산업이 어느 정도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양산업의 고용감소가 다른 성장산업의 고용증대로 상쇄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이 특정 산업부문의 충격을 흡수해 구조조정을 비교적 용이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 개입의 필요성은 그만큼 작다. 그러나 그만큼 사회정책 수요가 크고 국가 개입 필요성도 커진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국가 개입이 최소화된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ies)가 발달한 것은 다양한 산업포트폴리오와 대규모 내수시장을 갖춘 미국경제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이 외에도 미국은 달러라는 기축통화, 국제금융 위계구조의 최고 정점인 월스트리트, 높은 인구증가율, 경쟁적인 시장구조, 투기적 공격이 쉽지 않은 대규모 자본시장, 풍부한 천연자원, 세계의 두뇌를 흡수하는 대학 경쟁력 등 다른 나라들이 따라하기 어려운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미국모델이 세계기준이며 시장경제의 보편모델이기 때문에 미국모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영미권 국가들을 제외하면 선진국들은 대부분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조정된 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ies)다. 더욱이 영미권 국가라고 해도 아일랜드는 노·사·정 사회 협약을 통해 OECD국가들 중 최고의 경제성과를 내고 있으며, 영국도 사회복지에서 국가 역할이 미국보다 더 크다.
미국식 자유시장경제는 예외적인 모델이며, 다른 나라들이 모방하기 쉬운 체제가 아니다. 미국모델은 미국이라는 대단히 예외적인 역사 배경 속에서 형성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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