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천지가 깜깜한 상태에서 열추적을 통해 주변이 자동 감시되는 최첨단 감시 장비에 사막 늑대 한 마리가 잡혔다. 온 천지가 고요한 가운데, 우리 병사들의 날카로운 눈빛이 아르빌의 밤을 밝게하고 있었다.
울산이 고향이라는 상병, 역시 울산 출신 이병이 나란히 보초를 서고 있는 초소에 들렸다. 이병이 어찌 벌써 이라크에 있느냐고 물으니 2월에 입대하여 다음 달이면 일병으로 진급한다고 했다. 우리 집 막내아들보다 2개월이나 고참이다 했더니 귀엽게 웃으며 ‘충성’하고 경례를 붙인다. 상병이 전방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조목조목 보고하는 솜씨가 역시 고참답다. 누가 요즘 젊은이들을 어리고 나약하다고 말하는가. 나라와 역사를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굳건한 붉은 피가 든든하게 흐르고 있는 것을 결코 모르고 하는 소리리라!
이라크 북동지역에 위치한 아르빌. 세계에 4000만명 정도가 나라 없이 흩어져 살고 있는 쿠르드족의 근거지이다. 이곳 아르빌에는 400만 명 정도가 운집해 살고 있고, 면적은 경기도 면적 정도이다. 야간 경계병의 역할을 자임하고, 초소에서 바라본 아르빌 시내는 조명이 예상 외로 찬란해 보인다.
5년 전, 건설, 의료 지원부대로 제마부대가 나시리아 지역에 주둔하였을 때에도 나의 제안에 따라 동행한 국회의원들이 사병 한사람과 보초를 서며 동참의 뜻을 함께 새긴 적이 있었다. 현지 장병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야간경계경비를 자임했었고, 이번 이라크 자이툰 부대 역시 동행한 의원들과 의논하여, 흔쾌히 야간 보초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한 시간쯤 초소를 돌고 나니 온 몸에 땀이 흥건했다. 지프차를 타고 안내 부사관과 숙소에 도착하니 밤 12시30분경이다. 잠결에 보초를 서기 위해 일어나는 기분은 현역 시절이나 지금이나 피곤하고 불편한 일이었다. 보초를 서기 위해 주섬주섬 옷을 꿰어입고 잠자리를 나서던 현역 사병 때의 그 시절이 절로 생각났다. 이제는 국회의원이라는 위치에서 자식 같은 장병들을 위로하고, 어떻게 하면 사기를 높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이유야 어찌하던 이역만리 열사의 나라(낮에는 47도, 밤에는 30도), 이라크까지 와서 어려운 사람과 나라의 바로서기를 지원하고 있음은 우리 국군의 중요한 역할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독재자 후세인으로부터 수십만이 학살을 당하고, 나라 없이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며 이곳을 근간으로 쿠르드 국가를 세워보고 싶어 하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일제에 국권을 잃고 식민지가 되었던 우리네 심정과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숙소에 돌아와 군복을 벗어놓고 한숨에 마신 냉수 한잔에 피로가 모두 풀리는 기분이다.
“자식 같은 자이툰 장병들아. 너희 스스로는 아직 모르겠지. 너희들의 사막에 뿌린 열정들이 모이고 쌓여가며 대한민국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그리고 먼 훗날 또 태어나 살아갈 우리 후손들은 아련한 옛날 선조들이 무슨 이유로 이라크까지 건너가서 뜨거운 고생의 열기를 뿜어내었는지를 이해하며 역사가 된 자이툰 부대를 생각하게 되겠지.”
장병들이 생활하고 있는 컨테이너 침실에는 그래도 에어컨 시설이 잘되어 아무런 불편 없이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장병들과 함께 계란말이, 김치찌개로 든든한 아침을 함께 했다. 무더운 날씨에 병사들의 영양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현지 장교의 설명이다. 고된 인간의 역사가 흐르는 이라크 아르빌의 깊은 하늘과 빛나는 별이 더 환하게 보이는 듯 했다. 이제 국익과 정의를 생각하며, 이라크 파병에 대해 국회에서 심도 높은 토론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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