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정치가 중에서 두 타입의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면 전자는 대처이고 후자는 레이건이다. 대처는 유례가 드문 강한 신념으로스스로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했다. 레이건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마음을 열어줌으로써 상대방을 매료하여 정책 수행의 환경 만들기에 성공했다. 대처는 논리의 간단 명료함에 의해 상대방을압도하고, 레이건은 인품으로 상대방을 매료했다.
레이건의 경우 즉 조정 형 리더의 경우, 부하로 사람을 얻었을 때 강력한 지도 태세를 만들어낸다.
정책의 형태를 만드는 제언은 오로지 부하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베이커수석 보좌관, 대통령에게서 “내 아들(My Son)”이라고 불린 디버 차석 보좌관, 미즈(Edwin Meese) 대통령 고문의 세 명이 화이트하우스에서 트로이카 체제를 만들었던 제1기의 레이건의 정치 운영은 매우 원활하게 기능했다. 그러나 베이커가 재무장관으로 전출되고, 디버가 퇴직하여 자신의 사무소를 설립하고, 미즈도 사법장관이 되어 화이트하우스에서 빠져나가고, 정치 감각이 부족한리간 수석 보좌관이 화이트하우스를 좌지우지하게 되고 나서는 레이건의 정책에 균열이 생겼다. 레이건과 같은 리더의 경우 스태프의 좋고 나쁨이 리더십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다.
대처의 특질은 신념을 현실로 옮기는실행력이다. 스스로의 주장을 정책으로 옮기고 그것을 강인하게 밀어붙이는 수행 방식은 독재적이기조차 하다. 합의를 거부하고 대처리즘이라는 주의를 내세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영국 보수주의와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영국 보수주의를 보기 좋게 표현한 책으로 유명한 이안 길모어의 “우파의 내막”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어떤 영국 보수주의도 추상적인 정치적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다.”
“어떤 경우나 정부의 개입은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다거나, 경쟁이야말로 국가의 개선에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하는 국가나 정부는 장기적으로 그 주장을 관철할 것이다.”
“완전한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의 보증은 되지 않고 실제로는 정치적 자유를 손상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 보수주의 본류인 길모어가 설득하는 말을 부정하는 곳에 대처가 있다. 즉 대처는 보수 본류에서 벗어난 이단자라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이 이단적인 보수주의를 내세워 나아가는 대처에게는 강력한 리더십이 있다. 그녀의 스태프는 그녀를 위해 정책을 입안하는 것보다 정책의 실현에 힘을 쏟도록 요구 받았다. 대처의 단순 명료함, 과격함을 싫어하는 웨트 파가 연달아 잘려나간 과정은 대처가 거물이 되어감에 따라부하가 작아져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바로 온순한 부하가 필요했다.
영국 내에서 대처는 처칠 또는 드골과 흔히 비교된다.
취임시와 포클랜드 전쟁시 특히 처칠과 비교되는 경우가 많았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