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가 처칠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그 정치적 수법, 즉 자기 주장의 실현을 위해 타인을 설득하는 그 설득 방법이었다. 처칠은 위트와 유머와 의지에 의해 사람들을 점차 자신에게 접근시켰다. 폭 넓은 취미, 역사에 대한 깊은 조예, 박람강기 등의 인격적 매력을 12분 발휘하여 사람들을 자신의 주장으로 끌어들였다. 강한 신념을 가지면서 설득에 의해 사람들에게 이 신념을 이식하고 확대시킨 것이다. 그 점에서 영국 보수당의 전통인 컨센서스(합의)의 정치를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처의 정치 수법은 그 논리의 날카로움을 무기로 공격하고 공격하며 끝까지 공격하여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공격에서 가장 우수한 정치가”라는 말을 듣는 이유이다. 거기에는 처칠과 같은 유머도 없으려니와 넓은 인간적인 폭도 없다. 인간적 매력보다 논리의 올바름만으로 밀어붙여 가는 지극히 공격적인 정치가였다. 거기에는 2대 정당의 대립을 컨센서스에 의해 완화한다는 영국 정치의 전통은 볼 수 없다.
“대처”의 저자인 조지 블록이 지적한 대로, 대처는 “전후 컨센서스를 거부한 최초의 수상”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녀는 합의의 정치가가 아니라 신념의 정치가라 불리는 것이다.
이 그녀의 신념의 핵심에 19세기적 빅토리아 시대의 상이 있다. 그것은 대처의 연설이나 인터뷰의 곳곳에서 볼수 있다.
“빅토리아 기의 영국에서 공업, 상업이 얼마나 확대되었는지 봐주세요. 이 시대는 타인에 대한 의무감도 만들어냈습니다. 빅토리아 기는 병원을, 학교를, 형무소를, 공장을, 타운 홀(시청사, 시 공회당)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빅토리아 기처럼) 국민이 번영했을 때 국민은 국가에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바쳤던 것입니다. 지금 공공 관리로 바뀐 학교의 대부분도 원래는 자발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공공 병원이 돼버린 병원도 영국에 있는 자선 감정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몇몇 형무소도, 몇몇 타운 홀도 그랬습니다.”
빅토리아 조 시대는 그녀에게는 이상적인 시대였다. 빈부의 격차가 진행되고, 노동자가 가혹한 환경에 놓였으며, 아동을 탄광에서 일하게 만드는 식의 아동 학대가 계속되고, 진을 대량 소비하여 알코올 중독이 증가하였으며, 매춘 말고는 생활 수단이 없는 여성(런던 여성의 6분의 1이 매춘부라고까지 했다.)이 급증하는 등의 사회의 어두운 면이 아니라, 산업이 번영하고, 중산계급이 창의와 노력에 의해 부유계급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의미하고 있었다.
노력과 재능에 의해 사회의 계단을 올라갈 수 있는 시대야말로 대처로서는 이상적인 시대였다. 이 시대의 중산계급은 경건하고 모럴이 엄격하며 ‘건전한 가정’을 최고의 가치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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