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세계화, 100년 전과 지금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8-15 19:57:38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조영철(국회 산업예산분석팀장) 금융세계화는 이 시대를 규정하는 열쇠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화가 이 시대의 새로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인터넷의 정보기술과 교통기술이 발달하자, 국경 사이의 장벽이 낮아지고 국제거래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정보기술과 교통기술이 없었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화시대가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계화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9세기말~20세기초에도 지금 못지않은 세계화시대였다. 19세기말~20세기초에 증기선과 유선전신 기술만으로도 오늘날과 비슷한 수준의 국제 무역과 자본 거래가 이루어졌다. 20세
기 중반 교통·통신기술은 20세기초보다 더 발달했지만 세계화 정도는 훨씬 뒤쳐졌다. 이것은 오늘의 세계화시대를 가져온 핵심은 기술발전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초는 지금처럼 투기적 금융자본이 세계를 휘젓고 다녔고 여기저기서 주식시장 거품을 만들어냈고, 외환·금융위기도 빈발했다. 20세기초 금융세계화 시대가 종막을 고한 것도 결국 대공황이란 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공황 이후 금융 안정성을 위해 금융을 규제하는 뉴딜체제가 성립하면서 금융산업 비중은 급감했다. 따라서 1950-70년대가 1910년대 보다 실물경제는 더 발달했으면서도 금융산업 비중이 더 낮았던 것은 뉴딜체제가 금융을 규제한 결과이다. 1970년대 후반 이후 금융산업 비중이 증대하고 국제간 자본거래가 급증한 것은 거꾸로 금융자유화정책으로 금융과 자본이동을 규제한 뉴딜체제가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도금시대(gilded age)라고 불렸던 20세기초는 지금처럼 금융이 융성한 반면, 노동자 권리는 취약해 불평등이 심각했던 “모던 타임스”와 “위대한 갯츠비”의 양극화 시대였다. 1920~30년대 미국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뉴딜 개혁이후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45%에서 불과 수년 만에 30% 수준으로 급속히 하락했고, 이 비중은 1942~1970년대말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금융자유화 이후 미국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1990년대말이 되면 45% 수준에 육박하여 20세기초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미국 상위 10%의 소득 비중 증가는 대부분 상위 1%의 소득 증가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 상위 소득자의 소득 비중이 1980년대 이후 급증한 이유는 주로 사업소득과 자본소득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자유화정책으로 금융과 주주자본주의가 발달한 미국과 영국은 불평등이 심화된 반면, 주주자본주의의 영향이 약했던 덴마크, 프랑스, 이탈리아, 핀란드, 일본 등은 불평등이 오히려 소폭 감소하거나 거의 변화가 없었다. 존 메이나드 케인스(J. M. Key nes)는 비생산적 성격의 금융자산계층이 세상을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었으며, 금융시장이야말로 군중심리의 영향을 받는 불완전한 시장이기 때문에 경제 안정을 위해 국가 규제가 꼭 필요하다고 보았다. 케인스는 국가가 국제 자본 흐름을 규제하지 않으면 권력은 민주선거로 선출된 정치인들의 손에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금융투자자의 손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케인스를 얘기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케인스의 경고를 무시해도 될 만큼 지금이 케인스시대와 다른 것일까? 사람들이 케인스시대보다 더 현명해졌는가, 아니면 국제 투기자본의 탐욕이 과거보다 줄었는가? 고삐 풀린 국제 자본 흐름이 금융불안정을 증폭시키고, 국민국가의 정책 자율성을 위협한다는 측면에서 케인스시대와 지금이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공공부문 비효율 문제는 개혁돼야지만, 국가 역할을 축소하고 자본자유화와 시장규율을 강화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뉴딜 이전의 도금시대로 돌아가는 역사의 퇴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된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