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개혁입법 대상 중 과거사 청산문제의 일부인 친일파 청산문제는 20세기 전반기에 저질러진 비리 청산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국가보안법이나 언론법, 그리고 사립학교법 문제 등은 모두 불행했던 20세기 후반기, 즉 민족의 다른 한쪽인 북녘을 ‘초전 박살’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절규했던 권위주의 체제가 분단의 비극을 정략적으로 악용하기 위해 만든 법률들에 대한 개혁 공략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민족의 다른 한쪽을 ‘국가 참칭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은 전형적인 반통일적 권위주의 시대의 직산물이다. 바로 이 시대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녘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민족의 다른 한쪽을 적으로 단죄하는 세계관에 입각해 획일적이고 전면적으로 처단하던 시대였던 것이다. 따라서 군사독재가 미화되고 정당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국제적으로는 소련 및 동구 공산권이 몰락하고, 국내적으로는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하는 획기적인 역사적 변혁이 이루어졌다. 특히 6.15 공동선언으로 인해, 민족 문제에 큰 변화가 초래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남북한이 대결과 상쟁에서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과업을 과연 누가, 그리고 어떤 세력이 담당할 수 있단 말인가?.
새로운 통일 지향적 민주화 시대를 이끌어나갈 역사적 사명이 군사독재 세력과의 야합이나 연합 없이 이루어진 새로운 권력 집단에 부과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현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결국 노무현 정권이 이 역사적 과업을 떠맡게 된 것이다.
따라서 4대 개혁입법의 대상들 모두가 새로운 통일 지향적 민주화 시대의 근본정신과는 결코 부합할 수 없는 기본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청산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되었다.
노무현 정부 및 그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개혁’세력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보수세력이 4대 개혁입법 문제를 두고 벌였던 치열한 전투는 곧, 반통일 권위주의 시대를 주도한 구 정치세력과 통일 지향적 민주화 시대를 이끌어나가야 할 새로운 정치세력과의 전면 대결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노무현 후보의 승리는 국민의 승리와 진배없었다.
그는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역사상 최초로 가장 젊은 대통령이었다. 요컨대 ‘새로운’ 정치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정신적·육체적 참신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는 한국 정치의 낡은 부조리를 청산할 수 있는 활력과 생기를 내뿜었기 때문에 산산이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성장 과정에서 온갖 사회적 고초를 겪어온, 고등학교 졸업장 밖에 갖추지 못한 밑바닥 인생 출신 대통령이다. 아울러 우리 국민은 사상 최초로 고등학교 중퇴 학력 밖에 갖지 못한 퍼스트레이디를 갖게도 되었다. 노 후보는 서민의 아들이면서 서민의 튼튼한 기둥이 될 수 있는 자질을 폭넓게 지니기도 한 것이다. 이를테면 국민으로 하여금 난관을 뚫고 희망을 샘솟게 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로 등장하기는 했다는 말이다.
애초에 노무현 정부는 수많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인권 존중, 민주주의 발전, 평화와 번영 등을 목청껏 외쳐대었다. 하지만 그러한 정부 하에서도 예컨대 양심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양심수에 대한 사면 조처조차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나아가서는 “노동자의 눈물을 씻어주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과는 달리, 참여정부는 집권 4년 동안 921명의 노동자를 구속시켜, 문민정부 출범이래 최대 구속자 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1996년 노동법 개정에 맞서 노동자 대 투쟁이 일어났던 김영삼 정권 시절(632명)이나, 외환위기 직후 기업의 정리해고로 노사갈등이 극에 달했던 김대중 정권(892명) 하에서도, 노동자 구속자 수는 참여정부보다는 많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역사적 과업이었던 개혁은 물거품이 되고, 여권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노 대통령은 개혁지향적 자세를 진보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왼쪽으로 갈 듯이 좌회전 깜박이를 켠 채로 당당히 우회전하고 말았다. 진정한 ‘정치 9단’이 절실히 요청되는 난국을 맞이했음에도, 급기야는 정치적 초보운전자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국민의 지탄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이른바 386을 중심으로 한 여권의 주도 세력 역시 스스로 정치적 미성년자임을 자인하는 결과를 자초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코앞에 두고 있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환골탈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쟁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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