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얘기가 나오니까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가 생각난다. 작품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만 준다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도 바치겠다는 ‘파우스트’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현대인의 자화상을 문득 떠 올린다.
다른 나라의 공무원들도 이런 말을 하는가. 하기 때문에 막스 베버의 말이 전해 오겠지. 군사독재시절 공무원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혁명 초기에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공무원은 모두 도둑놈 취급을 받았고 조금만 밉보여도 목이 날라 갔다.
이럴 때 간 찾고 쓸개 찾을 겨를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목 날아가면 대신 밥 먹여주느냐고 했다. 따라서 영혼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독재 앞에서는 모두가 영혼이 없는 불쌍한 인간이었다.
공천을 위해 간도 쓸개도 영혼도 버리는 것이 지극히 정상인 우리의 정치풍도에서 지금 나는 잠꼬대를 하는 것이겠지. 나는 영혼을 팔아 당을 수도 없이 바꾼 영혼 없는 정치인을 알고 있다. 지금 그들의 영혼은 어디서 울고 있을까.
그들이 영혼의 아름다움을 느낄 때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지고 정치도 깨끗해지고 인간대접을 받으리라고 믿는다. 자식들도 영혼 없는 애비의 자식이란 소리를 안 듣겠지.
언론자유가 만발이다. 마음만 먹으면 쓴다. 언론이 탄압받던 시절에 간도 쓸개도 빼 놓고 써야만 검열에 통과될 수 있었던 기사를 이제는 마음 놓고 쓴다. 그 대신 ‘이건 아닌데’ 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기자들이 미리 간과 쓸개를 다 빼 버리고 심지어 영혼까지 휴가를 보내고 쓰는 기사가 많다.
사주를 위해서인가. 권력 편을 들기 위해서인가. 하기야 그것도 언론의 자유라고 한다면 자유겠지. 이름 붙이기 나름이니까. 그러나 그들의 영혼이 뭐라고 말 할 것인지 딱한 일이다.
인수위가 떴다. 공무원들이 인수위에 나와서 보고를 한단다. 인수위 보고과정에서 공무원들이 얼어붙는 모양이다. 인수위 관계자들이 점령군처럼 행세를 한다는데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수위 높은 사람도 인수위는 절대로 점령군이 아니고 점령군처럼 행세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인수위가 한두 명 도 아닌데 어물전에는 꼴뚜기도 있기 마련이고 함량미달의 ‘완장’ 인수위원도 있어 공무원들의 기를 팍팍 죽일 것이다.
“야당시절 아무리 말해도 꿈쩍도 안 했던 감사원이 인수위 방향에 맞는 보고를 하는 것을 보니 세상이 바뀌긴 바뀐 것 같다.”
며칠 전 감사원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인수위 부위원장 김형오가 한 말이다. 공무원들이 알아서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까지 경부운하에 대해 “경제성이 없다”고 했던 건교부는 “임기 중 대운하 완공을 위해선 6월 국회에서 특별법을 처리해야 한다”며 안면을 바꿨다. 야누스의 두 얼굴인가.
교육부가 대학입시 기능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넘기는 방안을 보고하고, 국정홍보처를 문화관광부에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등 스스로 알아서 기는 천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 가장 적극적인 부처는 머리좋은 사람들만 모였다는 경제부처다. “금산분리 원칙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던 금감위가 인수위에 와서 백기를 높이 들고 투항한 것이다. 이럴 때 진짜 공무원들이 영혼이 없구나 하는 말이 맞는다는 생각도 든다.
간도 쓸개도 없고 영혼도 없는 고위공무원과 아첨 배 언론을 이해는 해도 동의할 수는 없다. 솔직히 국민이 바라는 것은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다. 국민은 간과 쓸개가 모두 제 자리에 온전하게 붙어있고 입도 제대로 있어서 할 말 해야 할 때 제대로 말 할 줄 아는 공무원과 정치인을 원한다. 가만히 있어서 중간이나 가겠다는 사람들은 바라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말한다. 자기들은 종이 한 장으로 날라 간다고. 날려 보내는 것은 누구인가. 정치다. 정치에 영혼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국민이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공무원은 당당하다. 결국 영혼이 살아있는 국민과 공무원이 이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힘의 원천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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