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정권은 문민을 유독 강조했다. ‘하나회’를 정리하고 군부의 발호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문민에 복종하지 않는 무반(武班)은 다 끝장이 났다. 옳은 결정이었다. 그 여세를 몰아 별다른 경과조치 없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고 한 푼도 받지 않는다면서 칼국수를 먹었다. 한 푼도 받지 않는 것과 칼국수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그런데도 나중에 김현철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그런 ‘쇼’가 통했다. 김영삼정권 동안 포퓰리즘의 극치는 중앙청을 부순 일이었다. 일제의 상징이니 민족의 수치라는 간단명료한 등식으로 그는 그 일을 쉽게 해치웠다. 그 중앙청은 대한민국이 건국했던 곳이었다. 민족의 수치라면 더욱 후손에게 그 뜻을 전해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철거만은 막아야 된다는 주장도 파묻혔다.
외환위기를 맞아 금모으기라는 치졸한 발상으로 시작했던 김대중정권도 포퓰리즘에 병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노벨상에 집착한 나머지 막대한 돈을 국민 몰래 바치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그가 김정일을 만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이 통한다고 하면서 북한에 퍼주고 얻은 것은, 평화가 아니었다. 그가 자랑했던 ‘평화’는 포퓰리즘에 영합한 발언일 뿐이었다. 그는 그 합의 이후 이제 전쟁은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김정일이 핵실험을 하자 북한을 자극하면 전쟁이 난다고 되레 겁을 주었다.
포퓰리즘을 가장 잘 이용한 정권은 노무현정권이었다. 그는 수도이전이라는 공약으로 충청도의 표를 끌어모아 당선되었다. 선거 기간에는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연일 촛불시위가 벌어졌다. 탄핵소추가 있고 나서도 촛불시위는 광화문 거리를 메웠다. 방송은 철저하게 포퓰리즘에 봉사했다. 그가 벌인 포퓰리즘의 백미는 과거사법이었다. 친일(親日)이라는 멍에는 그 어떤 죄보다도 더 크고 씻을 수 없는 악(惡)이었다. 당사자는 이미 죽어 소명할 길이 없는데도 몇 가지의 문건 만으로 부관참시되었다.
마침내 정권이 바뀌었다. 새 정부의 수장인 이명박 당선자가 자랑하는 것이 청계천 복원과 버스중앙차로 시행이다. 청계천은 복원된 것이 아니라 인공 하천을 만든 것이고, 버스중앙차로는 내가 보기엔 좌파교통정책에 불과하다. ‘Hi Seoul’이라는 이상한 영어로 쓴 구호도 영 못마땅하다. 시청앞 도로를 없애고 그 자리에 광장을 만들어 겨울철에 얼음판을 만든 것도 너무 볼쌍사납다. 실용을 강조한다면, 물이 흐르지 않는 청계천은 메워 도로로 쓸 일이요, 버스중앙차로를 만들어 바쁜 사람을 더 바쁘게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 정책들이 이념의 차이로 나온 것이라면 모르겠거니와 아마츄어적인 발상이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포퓰리즘에 영합하기 위해 만든 전시행정이라면, 그건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이제 이명박 시장이 아니라 나라의 수장인 이명박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남대문(南大門)이 불탔다.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 숭례문(崇禮門)이라 이름짓고 세로로 편액을 건 서울의 대문이자 조선의 대문이 불타버렸다. 이 남대문은 이명박 시장 때 시민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하루에 몇 차례 조선조 관군 복장을 한 이들이 줄지어 의식도 벌였다. 그러면서도 밤에 이 문을 지키는 이가 없었다는 것은 정말 놀랄 일이다. 개방 때나 그 뒤나 전문적인 조언 한 마디 없었단 말인가. 아니면 듣고도 잊어버린 것인가. 그렇다면 이 역시 포퓰리즘 정책일 뿐이다.
언론에 나온 시민들의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숭례문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
그렇게도 증오했던 군사정권이 아닌, 문민의 정부들이 무너뜨리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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