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릿 대처와 박노자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8-02-28 18: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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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춘(창조한국당 의원) 박지향이 쓴 대처 평전 <중간은 없다>(기파랑, 2007)와 박노자의 일기모음인 <만감일기>(인물과 사상사, 2008)를 읽었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대처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2년 가까이 영국 총리로 장기 집권하면서 복지국가 영국을 신자유주의의 모델국가로 개변시킨 인물이다. 반면 박노자는 확신에 찬 사회주의자이다. 스탈린주의, 국가주의, 군국주의를 거부한다는 면에서 이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대처가 지금 세계의 유력한 조류 중 가장 오른편의 이념과 철학인 신자유쥬의를 대표한다면 박노자는 가장 왼편의 철학을 대변하는 사람이다. 정치가와 학자의 차이는 있겠지만 편의적으로 분류해보자면 그렇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두 사람에 대한 책을 의식적으로 연이어 읽으며 둘 모두로부터 배울 점을 발견했다. 자기의 근본적 입장을 명확히 하고 일관되게 실천(정치와 저술을 통해)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 두 사람 모두와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한 것도 또하나의 새김질이 되었다. 두 책을 읽고 난 소감을 결론부터 말하면 이 두 개의 사조 사이에 당연히 ‘중간’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오히려 시대적 진리에 가깝다라는 것이다.

대처식의 사고방식이 갖는 결함은 인간은 누구나 노력하면 다 성공하고 잘 살 수 있다고 과장하면서 현실의 문제들을 은폐함으로써 기회와 결과의 불평등을 모두 조장하는데 있다. 반면 박노자식의 사고방식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실패의 경험을 반복한 이런저런 좌파의 오류들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가 비록 폭력과 독재에 반대하기는 하지만 그의 이상들을 ‘국가’라는 범주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가 반대하는 방식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한한 이성과 무한한 욕망들이 충돌하는 현실의 국가 안에서 그 고상한 목표들을 평화와 합의의 방식으로 관철시켜낼 도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당대의 진리는 대처와 박노자의 중간이다. 한편에서 자유로운 경쟁의 환경에서 개인의 개성과 자질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해주고 각자가 노력한 결과는 자신에게 수혜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20세기 서구 수정자본주의의 대세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고 재도전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더 나아가 육아와 교육과 의료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북유럽이 가장 모범을 보인 복지국가모델이다. 심지어 대처가 아무리 많이 바꾸어놓았다고 하더라도 대처이후의 영국까지도 여전히 이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우리의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대처주의는 70년대 영국의 몰락에 대한 국내 정치의 반작용이었지만 우리에게 신자유주의는 무엇인가? 지난 10년간 미국이 강요해서 이식시킨 미국식 자본주의일 뿐이다. 지금 이 나라에 대처가 해체시켰다는 복지국가 이후의 영국만큼이라도 복지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경제적 양극화가 날로 우심해지는 한편 기업(특히 중소기업)의 활력마저 쇠락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요컨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한국에서는 대기업을 제외한 기업과 개인 모두를 더욱 옥죄고 있는 사슬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에서마저 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이 예상되는 마당에 우리는 여전히 복지후진국-그래도 우리보다는 낫지만- 미국의 불구적 보수파의 논리를 신주처럼 떠받드는 정치적, 지적 황폐의 세상에 살고 있다. 한나라당이든 통합민주당이든 지식인이든 주류의 세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 대한 맹목에서 벗어나 눈을 돌려 세계를 바라보면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을 우리보다 더 잘하면서도 그 나라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적 특성에 걸맞는 발전모델을 만들어 실행하고 있는 나라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제라도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쟁과 도전을 통해 우리 나름의 주체적 발전모델을 궁리해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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