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의 발언은 수질개선 예산을 준설, 하상 정비, 하천주변 환경개선 등의 명분을 내세우고 실질적으로 운하건설에 투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운하는 민자로 건설하겠다고 누차 강조하더니 간단하게 말을 뒤집은 것이다. 이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여러 강의 물길을 잇고 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절대다수는 운하 건설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운하가 구(舊)시대의 역사적 유물(遺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대통령이 “강을 하수구인 양 쓰는 곳은 우리나라말고는 없다”고 한 부분은 특히 기가 막힌 일이다. 진실을 말한다면, 우리나라 국민의 절대다수는 강을 ‘생명의 젖줄’로 보고 있다. 라인 강 본류(本流)의 물을 먹지 않는 독일 국민과 달리, 우리 국민이 먹고 쓰는 물은 모두 강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강을 살려야 한다’는 명제(命題) 만큼 온 국민의 합의를 이룬 것도 드물다.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이어온 환경정책의 기조(基調)이기도 하다.
노태우 대통령은 팔당호와 대청호 상류지역을 특별대책지역으로 선포했는데, 그것은 물론 한강과 금강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린벨트를 풀어 젖힌 김대중 대통령도 강을 보호하기 위한 토지규제는 그대로 두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물이용부담금을 걷어서 상류지역에 하수처리장을 획기적으로 확충했다. 한강 상류 지역인 경기도 동부의 주민들이 재산권 침해를 감수하고 있는 것도 수도권 2000만 명의 식수원(食水源)인 팔당호의 수질을 지켜야 한다는데 대해 동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강을 하수구 정도로 생각했다면 이 대통령이 시장을 지낸 서울의 시민들은 수돗물을 먹기는커녕 수돗물로 샤워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환경분야 예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이 수질개선 분야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중 ‘맑은 물 사업’에 20조 원 이상을 퍼부었다. 한강 유역에 토지 규제가 그렇게 많은 것도 한강이 2000만 수도권 주민의 유일한 상수원(上水源)이기 때문이다. 강을 하수구로 여겼다면 지난 30년 동안 이렇게 많은 토지규제법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수계별로 수질을 보호하기 위한 개별 특별법을 제정한 나라는 세계에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국민은 우리의 강을 ‘하수구’가 아니라, ‘생명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하수구’ 발언은 국민을 모독한 것이며, 박정희 대통령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는 전임 대통령 전원을 모욕한 것이고, 많은 수질관련법률을 제정한 전·현직 국회의원 전원을 모욕한 것이다. 수질보호 때문에 지역발전이 저해되고 있는 춘천, 안동 같은 댐 상류지역 주민들을 모욕한 것이고, 경기도 양평 광주 이천 등 지역개발이 제약되고 있는 한강 상류지역 주민들을 모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운하를 건설하면 대한민국의 ‘國運(국운)’이 융성해 진다고 자신 있게 여러 번 말했다. 그런 패기는 어디 가고 이제 궁색하게 말을 바꾸면서,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만 강을 하수구로 사용한다”고 엉뚱하게 말을 둘러대고 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준설을 하고 하상 정비를 한다는 이유로 국가예산을 운하건설에 퍼부으려고 하고 있다. 강바닥을 준설하고 하상을 정비하는 것은 그럴싸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것을 마음대로 못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멋대로 강 바닥을 휘저으면 침전물과 오염물질이 확산되어 식수공급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뉴욕 주민의 식수원인 허드슨 강도 그래서 준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이재오 의원은 “80년 전 만해도 소금 배 새우젓 배가 휘젓고 다녔지만, 지금은 비만 오면 홍수가 나고 강물은 썩어 가고 있어 오염의 강이 되어 가고 있다”고 했다. 이 역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다. 한강과 낙동강 상류에 다목적 댐을 세운 후 홍수와 가뭄 피해가 획기적으로 줄었음은 초등학교 학생도 다 아는 사실이다. 과거 정권에서의 수질보호 정책이 항상 효율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간의 경제성장 인구증가 도시화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강의 수질은 양호한 편이다. 운하를 건설하면 홍수가 막아지고 수질이 좋아진다는 주장은 혹세무민(惑世誣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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