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과연 지금도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보유를 용납하지 않고, 북한정권을 붕괴시키려 하고 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즉,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아울러 북한정권을 붕괴시키기는커녕 북한과 우호관계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이렇게 볼 수 있는가? 우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데도 미국의 부시정부는 이에 대해서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거니와 북한에 대해 ‘테러 지원국’에서 삭제할 뿐만 아니라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 미국은 ‘북핵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금지시키려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형식상 그것을 지향하고 있기는 하나 내용적으로 보면 적어도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6자회담의 목표인 ‘2.13 합의’에 북한의 핵무기 폐기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 궁극적으로 핵무기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한다고 천명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이행계획서에는 기존의 핵무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한마디로 이미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기정사실로 하고,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 수 없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서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함과 동시에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2.13 합의 내용에 기존 핵무기 처리 방안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과연 6자회담이란 것이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폐기를 목표로 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지만 ‘핵불능화’ 프로그램을 이행한답시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심지어 북한이 핵무기를 추가로 개발할 시간을 주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처럼 실효성도 없는 핵불능화 프로그램을 이행하면서, 총 100만톤 상당의 에너지를 지원하고, 미국과 북한은 전면적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조치로 북한에 대한 테러 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하기로 되어 있다. 한마디로 기존의 핵무기는 기정사실로 하면서 경제적 지원과 함께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미국은 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우선 국내외적으로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폐기를 위해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 북한이 더 이상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국외로 유출하지 않도록 하는 데서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듯이 선전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해주는 대신에 북한을 미국의 ‘대중포위전략’에 포함시키고 싶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도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해 주는 한 미국의 ‘대중포위전략’에 포함되는 것을 거부할 까닭이 없다.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게 되면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데다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가장 좋은 조건을 확보하게 된다. 지금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이런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과 미국의 이런 야합에 대해 러시아와 일본은 꼭 달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들이 나서서 저지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보아 한발 물러나 있는 상황이고, 이런 야합을 가장 싫어해야 할 남한은 노무현 정권 시절 미국의 북폭만 저지하면 된다고 생각한 데다 심지어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북한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야합을 용인했던 것이다. 민족의 장래를 암담케 하는 어리석은 정책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도 용납할 수 없지만 북한이 미국의 편에 서는 것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도록 하기가 어려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이런 태도에 대해 중대한 경고를 보내고 있을 것이 틀림없는데, 지난 6월 17일 중국의 국가부주석인 시진핑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금년 8월에 있을 베이징올림픽이 끝나면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와 미국 접근에 강력한 제동을 걸면서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체제유지 보장을 약속할 것이다.
이것이 북한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주변정세다.
이런 정세 속에서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하면서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만약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받고, 그리고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게 되면 북한은 한반도를 대표하는 국가가 되겠다고 할 것이다. 이미 북한의 대남정책은 바로 이런 기조 위에서 강구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본래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남북한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남한과의 대화와 교류 및 남한으로부터의 지원을 차단하려고 해왔다. 엊그제 있은 금강산관광객 총격사건은 북한의 이런 방침에 의한 것이다. 즉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와 교류 및 남한으로부터의 지원을 거부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면서 오히려 남한이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 및 대북지원을 중단하는 것처럼 비치게 하고자 이런 사건을 야기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한 후 북한이 이를 트집 잡아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것도 북한의 이런 방침 때문임은 물론이다. 핑계만 있으면 남북관계를 단절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남한의 각 정파는 엉뚱한 대응으로 북한의 이런 정략에 놀아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보수세력은 북한에 대한 과도한 비난을 통해 북한이 원하는 대로 남북한 사이의 긴장을 조성해주고 있고, 이른바 진보세력은 북한의 이런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이며 반인민적인 정략에 따라 남북관계를 단절하기 위해 살인행위까지 감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거꾸로 남한 정부에 대해 남북관계를 원만히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남한이 북한에 퍼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건만 진보세력은 북한에 퍼주기를 못해서 안달이고 보수세력은 북한에 퍼주기를 한다고 비난한다.
물론 북한과 미국의 의도대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기정사실로 인정되고 북한과 미국이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북한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에 포함되는 일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남한은 어떻게 될까? 남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에 끌려 다니게 될 것이며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날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이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이것은 마침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또 이로 말미암아 한반도에서 일어나면 핵전쟁이 되어 한민족이 절멸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정권이 핵무기를 방패삼아 버틸 경우 북한 인민들이 아사지경에 내몰려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번에 일어난 금강산관광객 총격사건에 대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온갖 헛 논란이나 벌이고 있으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더 한심한 일이 있으니 이른바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미국을 대하는 태도다. 민족의 절멸을 가져올 수 있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할 뿐만 아니라 인민을 아사지경으로 내모는 북한정권을 지원하는 미국을 규탄해야 마땅할 이 땅의 자칭 보수세력은 관성적 ‘친미’를 계속하고 있고, 비록 민족적 대의에는 어그러지지만 자기들이 지지해온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보유하게 할 뿐만 아니라 북한의 체제유지를 위해 다방면으로 지원하는 미국을 지지해야 할 이 땅의 자칭 진보세력은 역시 관성적 ‘반미’를 계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반미해야 할 사람은 친미하고 친미해야 할 사람은 반미하고 있는 바, 이만큼 우리사회가 맹목화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이 맹목성을 벗어나지 않고서 어찌 나라가 잘 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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