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속된 남북간 줄다리기로 인해 지금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금강산 사건과 10.4 선언을 겨룬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냉전시대 유엔에서 펼쳐진 남북의 외교대결을 방불케 했다. 한미정상회담은 이제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국내적 비판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대북 강경발언을 쏟아내는 화풀이 장소로 변질되고 말았다. 어렵게 자리를 함께 한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한마디 대화도 없이 차가운 시선을 교환해야만 했다. 북핵문제가 악화일로를 겪던 시기에도 중단되지 않았던 민간 차원의 교류와 접촉마저 지금 이명박 정부는 대북 압박의 수단으로 거부하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오락가락 대북 발언은 한반도 정세를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협력에 의한 경제공동체 구상을 확인하면서도 6.15와 10.4 선언에 대한 전향적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포털 업체 야후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도 남북관계가 곧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과 함께 생애 중에 통일을 볼 것이라며 갑자기 닥쳐올 통일을 대비해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서로 모순되는 시그널을 보내기도 했다.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중에 열린 을지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대남 분열시도에 철저히 대비하고 국지적 도발 가능성에 만반의 대응태세를 갖춰야 한다며 과거 냉전시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장기 경색국면에 진입한 남북관계에 더하여 북핵상황도 최근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8.11일로 예정되었던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무기 연기했다. 북한이 제출한 핵신고서의 검증체제가 아직 합의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후 아시아 순방길에서 북한의 핵포기 결단과 함께 완벽한 검증체제 수용을 압박했다. 잇따른 미국의 대북 압박에 대해 북한도 강경한 대응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달 20일 한미합동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을 비난하며 대남 대미 강경입장을 표명한데 이어 26일엔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진행 중인 불능화 작업을 중단한다고 밝혔고 향후 상황여하에 따라 핵시설의 원상복구도 고려하고 있다며 강경카드를 꺼내들었다. 검증체제를 둘러싼 협상국면에서 유리함을 차지하려는 고강도 압박전술로 해석되지만 2.13 이후 지속되어온 북미협상의 동력이 깨지지 않을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남북관계 경색의 구조적 장기화와 함께 북핵문제 악화까지 겹친다면 향후 한반도 정세는 긴장과 갈등 국면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지금의 북핵상황에 만족하고 더 이상의 협상의지를 거둘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이에 대해 북한도 차기 행정부와의 본격협상을 대비하며 지금의 북미협상을 주저하게 된다면 아마도 상당 기간 북핵문제가 교착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북한의 불능화 중단조치에 반발한 미국 등이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을 중단할 경우 북한은 불능화 원상복구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높고 이는 상호 상승적인 강경대응을 유발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문제는 북핵교착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우리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북핵상황이 교착될 경우 우리는 남북관계라는 지렛대를 활용해 북한을 설득하고 동시에 한미공조의 틀을 활용해 미국을 설득함으로써 북미간 타협점을 찾게 하는 적극적 역할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는 남북관계의 유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 우리에게 남북관계 복원이 시급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점증되는 한반도 긴장고조를 완화시키고 악화되는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남북관계 복원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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