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전통과 한옥”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8-09-23 19: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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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훈 (부천시 원미구 건축과 부설주차장팀장) - 부천의 공방거리는 우리의 전통과 맥이다 -

창경궁과 종묘는 원래 하나의 궁궐로 축성되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일본은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이곳을 별개의 공간으로 분절시켜 놓았다.

도로를 개설한다는 미명아래 원래의 지반보다 아래로 내려간 도로를 개설하면서 창경궁은 창경원이란 명칭으로 동물원을 조성했다.

종묘는 누구도 거뜰 떠 보지 않는 잡초가 무성한 폐허로 만들어 놓았고 또한 경복궁은 만국박람회장으로 시장
터로 만들고 근정전에서 광화문사이에는 조선총독부(중앙청)를 건설해 우리의 전통과 맥을 단절시켰으며 서울의 남산과 경복궁 사이에는 일본(日本)이란 한자를 본따 시청 건물을 건설했다.

전국방방곡곡의 명산이란 명산에는 쇠말뚝을 박아 민족의 정기를 누르고자 했으며 신사참배라는 형태로 우리의 민족정신을 식민화 하려고 했다. 침략의 상처는 그 시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대손손 자손까지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이러한 침략의 상처는 서서히 아물어 가고 있지만 민족에 주어진 상처라는 것은 내부(정신적)던 외부(문화적)던 언제가는 아물 것이다. 그러나 상처가 아무는 것은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자연치유나 인위적인 수술치료가 있을 것이다.

물론 세월이 지나서 자연치유가 되는 것이 좋겠지만 목숨이 다한 후에 자연치유가 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반문해 본다. 수술치료는 우리가 전통과 맥을 찾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과 전통문화 복원운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치료중 하나는 서울시에서 도로명의 명칭을 부여한 '율곡로'라 할 수 있겠다.

창경궁과 종묘의 단절을 일제가 했다면 우리의 역사를 인식한 신지식인들에 의해 일제의 만행을 견줄만한 이가 누구인가를 조사한던 차에 임진왜란 전에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율곡 이이(李珥)를 찾아 그의 호를 붙여서 “율곡로”라 칭했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물론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토목공사를 실시해 연결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과 맥을 잇는 방법이라 하겠지만 현재의 방법으로는 문화적 치유로 율곡로로 대처한 것은 적절한 방안이라고 할 만하다.

아직도 우리의 전통과 맥줄기중 찾을 것이 많은데 그 중 고구려 시대 전통문양인 다리가 셋달린 삼족오라는 새문양은 일본축구협회(J.F.A)의 고유 브랜드로 예전부터 사용하고 있고 조작한 것으로 밝혀져 가고 있는 광개토대왕 비문 등은 우리민족을 말살하고 전통의 맥을 단절코저 하는 제국주의 일본과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우리의 역사를 중국의 하나의 변방 부족으로 역사서에 기술하려는 대륙국가인 중국은 협작해 반도국이라는 지형학적 불리한(?)점을 적절이 이용하고 있으나 식민 사학자들이 위서(僞書)라고 주장하는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 우리의 역사는 오천년이 아닌 일만년으로 이 한반도에서 우리의 역사의 기원이 발원하였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통과 맥을 찾는 방법으로는 우리 스스로 우리 전통을 사랑하고 관심을 갖고 찾고자 하는 노력에 의해 재탄생할 것이다. 이런 가시적인 효과가 일본총독부 건물인 중앙청 철거와 광화문 원형 복원사업, 전국 명산의 일제시대 박힌 쇠말뚝빼기 등 하나하나 우리의 전통을 찾아가고 있고 뿌리를 인식하고 있다 할 것이다.

서울 북촌마을 보존사업, 수원 광신도시의 한옥마을 조성, 우리시에서 추진중인 상동 공방거리 한옥 조성 등은 이제야 한옥을 인식하고 한옥의 우수성을 찾는 우리의 전통과 맥을 찾는 시발점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전통은 비단 우리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전통이 우리의 맥을 찾는 지표가 됐듯이 미래의 후손들도 우리가 지켜온 전통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전통은 단순이 과거의 흔적이 아닌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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